시, 소설, 산문 63

지우고 싶은 시간도 선물이었습니다

지우고 싶은 시간도 선물이었습니다 이효경 글, 사진 (서울: 마음시회, 2023)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많은 일 가운데 스스로 얼마나 기쁨으로 누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본 기억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누리지 못함으로 슬퍼하고 힘들어했는지 말이다. 한두 문장으로, 단어로 압축된 삶의 자리가 가볍지 않음을 알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거대한 역사의 기록만이 아닌, 개인의 삶 또한 우주와 같음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SNS상에서 특히, 사진을 위주로 남기게 되는 형태의 플랫폼은 지우고 싶은 순간이 아니라 남기고 싶은 추억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혹여 머릿속에 남게 될 장기기억에서 빠질지 모를 부분을 남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온전히 ..

시, 소설, 산문 2024.05.20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엮음 이지수 옮김 (서울: 포레스트북, 2024) 세계는 넓고 작가도 많다. 특히, 센스 좋은 분이 많다. 그래서 국내 저자의 글 읽기도 바쁜데 일본 작가의 작품이라니. 자세히 보니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와 포푸라샤 편집부에서 선정한 작품들이다. 센류라는 짧은 음절로 이루어진 작품의 모음집이랄까. 순간, 시가 잘 써져서 미안해하던 시인이 생각난다. 제목이자 작품인 글을 읽으며 생각해 봤다. 두근거림이 다르게 다가오는 나이. 무언가 웃프다. 웃기지만 슬픈 자화상. 눈에 모기, 귀에 매미 키우는 걸 안다면 정말 마음이 아픈 작품이고. 곧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초고령사회다. 사랑 말고 부정맥 아니도록 조심해야겠다(난 아님).

시, 소설, 산문 2024.04.26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 숀 비텔 지음 이지민 옮김 (서울: 책세상, 2022) 오로지 책이 좋아서 책방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믿기 어렵겠지만 존재하긴 합니다(?) 그런 사람 중에 젝아 포함된다면 그야말로 행운 오브 행운이고요. 책 속에 파묻혀 사는 그 느낌적인 느낌을 원하곤 했습니다. 취미(혹은 동경하는 일과의 관계)와 생계는 다를수록 속이 편안하다고 하는데 커피가 좋아서 카페주인이 되는 것처럼, 책방지기가 되는 걸 정말 열심히 반대하는 분도 계시고요 ;) 이 책은 대전 노은 지역의 '책읽는 다락 서원 책방'에서 발견해서 모셔 온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고서(우리가 아는 표현으로는 중고)를 파는, 결이 다른 서점이긴 합니다. 그리곤 그 안에서 발견한 여러 종류의 손님들을 분류하고 그중에서 손X..

시, 소설, 산문 2024.03.09

순박한 마음

순박한 마음 귀스타브 플로베르 (서울: 민음사, 2017) 표지의 색감과 디자인부터 왠지 나를 붙잡았던 책. 노은동 동네 책방, 에서 발견하고 여러 번 만졌지만 참아냈던 책. 결국에는 점심시간에 읽으려고 구매하고 이제야 읽은 책. 왠지 모를 불란서에 대한 적당한(?) 거리감 때문인지 그 나라 작가의 책을 읽기를 좋아하진 않았다. 그래도 결국 텍스트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니까 읽게 되고 읽었던 문장이 나를 또 만들어간다. 단편소설 세 편이 담겨 있는 얇은 책. 작가에 대해서 검색해보면 나오는 사실주의 전문가의 스멜. 작가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느껴지는 꾸미지 않은 문장과의 만남은 읽는 속도를 천천히 느긋하게 만든다. 자동차로 드라이브하듯 빠르게 지나가면 느끼지 못할 풍광을 만나게 해주는 걷는 속도와 같은 ..

시, 소설, 산문 2023.10.15

눈, 물

눈, 물 안녕달 지음 (파주: 창비, 2022) 책방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발견하는 건 참 기분 좋은 순간이다. 급하게 혹은 느긋하게 책등을 마주하면서 지나가다가 멈출 때 발견하는 그 기쁨은, 온라인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롯이 오프라인 서점에서만 누리게 되는 기쁨이니까. 책은 양장본이었다. 그 자체로도 보관성과 책등이 주는 안정감이 있기에 만족스럽다고 할까. 다만 비닐로 포장되어 있어서 뜯어보지 못하고 담아왔다. 그래도 되는 믿고 보는 작가의 작품이니 괜찮다. 제목은 자세히 보니까 이 아니라 이라고 적혀 있었다. 왜 쉼표(혹은 숨표)가 있는지 궁금했다. 무언가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 걸까.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중에는 가 있었기에 눈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라 유추하며 읽으려고 준비했다. 인터..

시, 소설, 산문 2023.09.05

이 정도면 충분한

이 정도면 충분한 조희선 지음 (서울: 홍성사, 2021) 어느새 뒤돌아보니 살펴볼 게 많아졌다면 나이가 제법 많아진 사람이 되었다는 표지다.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느라 애써 외면하던 일련의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는 나이기도 하고. 꿈을 꿀 수 있다면 그보다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발견할 수 있을까.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이루어야 할 과업들이 참 많다.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어딘가에 취업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도 하면 좋겠다 싶은 게 많은 삶이다. 어쩌면 삶을 원하기에 이 책을 집어 들었는지 모른다. 물론 페친이자, 서점지기인 대표님 덕분에, 출장 중 늦은 시간 서점에 들르도록 배려해주셨고, 책을 만나게 되었고, 한참이 지난 이번에 읽었다는 게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순간이었지 않았을까. 책이 나를 부르는 시..

시, 소설, 산문 2023.09.02

커피의 위로

커피의 위로 정인한 지음 (서울: 포르체, 2023) 아침에는 카페인 세례를 받지 않으면 힘들어하는 나란 존재는 언제부터였을까. 오늘의 피로를 내일로 미루기 위해서 마시고, 지금 나에게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위해서 복용하는 커피. 아, 캠퍼스에서 마주치던 모습에서 한 손에는 응당 커피가 들려있었던 그런 삶이었다. 그 깊은 검은색이 주는 안정감은 내 속으로 들어오면서 구수한 그 향기도 칼보다 강하게 배어들었다. ‘눈물 젖은 커피잔’을 모른다면 인생이 아직 덜 흘러간 거라던데, 눈물은 모르겠지만 속이 쓰리거나 두근거림이 시나브로 찾아오는 일들은 맞이해봤다. 그래도 커피를 찾게 되고, 마시게 되는 건 작은 원형의 잔에서 찾아드는 위로가 아닐까. 소박한 위로가 되는 커피를 전하고 싶다. 77쪽 주변에서 만날 수 ..

시, 소설, 산문 2023.08.28

자전거 여행

자전거 여행 김훈 글, 이강빈 사진 (서울: 생각의 나무, 2007) 어릴 적 추억이라고 해야 하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사방팔방 쏘다니던 나날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여자아이 취향의 형광 연둣빛 바디가 싫어서 난리를 쳤던 못된 놈이었던 나. 그래도 그걸로 열심히 몰고 다녔다. 어느덧 업그레이드되어 나름의 MTB 자전거를 타고선 더더욱 멀리 나아갔고, 튼튼한 하체를 얻어냈던 그 시간. 물론, 어느새 그 자전거들은 엄복동의 나라답게 사라졌거나 오래되어 고철로 팔려나갔다. 지금도 동네에 방치된 자전거들을 보면 그런 운명에 처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 나의 물건이 아니니 무심하게 바라봐야 함을 되새겨본다. 고등학교 시절쯤, 학교 도서실에서 읽을 책을 추천해 주셨던 선생님 덕분에 읽게 되었던 김훈 작가의 와 는 ..

시, 소설, 산문 2023.08.21

누의 자리

누의 자리 이주혜 지음 (파주: 자음과모음, 2023) 삶의 자리를 지켜내려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언저리 어딘가에 나도 포함된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밤이 가져오는 적막함을 느끼는 직장인이자 한 사람. 그리고 그의 자리도 결국에는 누군가의 자리로 바뀌게 되고. 책의 제목이 되는 는 ‘누구’를 말한다고 한다. 과거에는 통용되었던 단어가 시나브로 보이질 않게 되어 버린, 빈자리라고 할까. 비워짐을 당했거나 아니면 스스로 물러났거나. 계속 부재할 수 없으므로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다만 그 자리의 아픔과 고통을, 무게를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이주혜 작가의 단편 소설 3편과 에세이 1편이 담겨 있는 이 책은 회색빛 혹은 잿빛처럼 양장이 감싸고 있다. 그 이유는 이야기를..

시, 소설, 산문 2023.07.29

아빠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아빠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윤정진 지음 (서울: 꿈꾸는인생, 2019)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이끌리어 책을 보게 된다면, 편집자의 컨택 능력이 대단했다고 할 수 있는 경우라 말할 수 있을까. 아빠가 된 이후로 달라진 게 있다면 내 꿈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꿈을 위해 바라봄이 달라진 게 아닐까 싶다. 이번에 펼치자마자 끝까지 보게 된 이 책의 저자도 딸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맞이하게 되는 삶의 찰나와 같은 순간들을 기록한 모음집의 느낌이 든다. 소중한 일상을 잊지 않으려면 기록보다 좋은 게 없음을 알기에 말이다. 책은 세 살쯤부터 시작해서 학교에 입학한 여덟 살의 삶이 담겨 있다. 매일매일의 기록이기보다는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부분들이 담겨 있는 일상의 기록들로 되어 있다. SNS상에서 공감받았던 글이 책으..

시, 소설, 산문 202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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