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소설, 산문 63

계엄

계엄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서울: 정은문고, 2024) 요즘은 MZ 세대가 대세인 시대입니다. 이렇게 2000년대 이후의 친구들과는 다르게 살아온 일명 86세대도 있고요. 바로 이분들이 주로 활동하던 7080 노래방이 생각나는 시대가 존대합니다. 세대를 넘어서는 시대의 차이, 과연 그런 제가 70년대 대한민국의 삶과 계엄령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특히, 비상계엄이 발동되었다가 해제되고 다시금 촛불이 일어서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간 속에서 말이지요. 이번에 읽었던 책은 다분히 외국인(일본인)의 시선으로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바라보고 느끼고 만났던 이들에 대한 적당량이 사실과 가명과 소설의 문장을 담아서 그려냅니다. 너무 무섭지도, 그렇다고 따분하지도 않게 따스한 햇살도 비추는 서..

시, 소설, 산문 2024.12.14

프롤레타리아 여인의 밤

프롤레타리아 여인의 밤 이숙경 지음 (고양: 인사이트브리즈, 2023) 영혼이 성장하는 시간은 평생에 걸침이 아닐까. 그렇다고 모두 다 성장하기 위해서 달려가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내지르지 않더라도 광속으로 나아갈 테니까. 그렇기에 사람은 살아가면서, 사랑하면서, 서롤 보면서, 서늘해지고, 살아 내 본다. 이숙경 작가의 작품을 여럿 읽으면서 항상 어느 부분에선가는 차갑고, 무겁고, 관능을 꿈꾸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항상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그려내는 특유의 문장이 다가온다. 이 소설에서는 조금 더 그녀만의 종교적 색채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조금 더 멀리서, 주변에서 느껴지는 죽음과 삶에 대한 미묘한 관전의 마음이 느껴질 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작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여러 감정과..

시, 소설, 산문 2024.12.10

파친코

파친코 1, 2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서울: 인플루엔셜, 2022)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순간들 가운데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사랑만큼 소중한 게 어디 있을까. 사랑이 전부라 믿고, 말하고, 나누고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이었다. 독서 모임 덕분에 마주하게 된 그 유명한 작가와 역자의 글을 마주하게 되었다. 뛰어난 번역으로 막힘없이 읽어 내려가는 문장과 그 가운데에 또 마주하게 되는 인생의 역사. 세상의 중심에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또한,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해서 희생하는 이도 존재한다. 초월적인 존재를 향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이도 존재한다.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자리가, 삶의 자리(Sitz im Leben)다. 이삭과 요셉과 노아와 모자수(모..

시, 소설, 산문 2024.11.19

눈물 상자

눈물 상자 한강 글 봄로야 그림 (파주: 문학동네, 2008)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면 부터 생각나는 아저씨입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보려고 몸부림치는 아저씨이고요. 이미 유명한 작가였지만, 노벨상 수상으로 엄청난 독서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한강 작가의 동화를 발견했으니 무조건 사게 되고 읽었답니다. 사실, 다른 작품부터 읽으려면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해서 그랬습ㄴ…. 돌아보면 아이들의 시간 속에서 짤막하지만,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 주던 문장이 삶을 이끌어 가도록 돕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 최고 도서는 이 남아 있고요. 다시금 한강 작가의 동화로 넘어와서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제목에서 풍기는 낯선 느낌과 읽어보도록 초대하는 느낌이 일품입니다. 시나브로 작품 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호흡..

시, 소설, 산문 2024.11.12

연필로 쓰기

연필로 쓰기 김훈 지음 (파주: 문학동네, 2019) 글을 쓰는 작가의 삶, 지난하지만 지속해서 사유하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해야 한다. 기자로 살아가다 작품을 쓰는 인생이 된 그는 연필로 원고를 작성한다. 책의 띠지에서도 만날 수 있는 문구는 돌아보게끔 한다. “나는 겨우 쓴다.”라는 작가의 단순명료한 문장. 작가의 묘사하는 문장이 일품임을 알기에 마주하는 「밥과 똥」의 꼭지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럼에도 읽어지는 문장이기에 더더욱 마음에 씁쓸함을 주었다. 마치, 『남한산성』을 읽어갈 때 마주하던 그 마음처럼. 다양한 글감으로 통찰을 넓혀주는 작가의 문장은 다 담아두고 싶었다.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인생길은 그 시대를 읽어볼 기회를 만들어 준다. 더하여 작문 선생님의 추천으로 만나게 되었던 『칼의 노래』..

시, 소설, 산문 2024.11.02

순례 주택

순례 주택 유은실 지음 (서울: 비룡소, 2021)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나그네처럼 살다 가는 인생일까요. 이를 조금은 다른 말로 한다면 순례자가 되리라 생각해 봅니다. 독특한 이름의 주택 이름이 책의 제목입니다. ,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로 만나게 되는 “순례씨”라 불리는 할머니와 그녀의 최측근 ‘수림’도 있습니다. 1군이라 불리는 이들 덕분에 마주하게 되는 일촉즉발의 다양한 상황과 성장 스토리가 일품이고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일들은 실로 다양합니다. 배꼽 빠지게 웃게 되는 일도 있을 테고요. 눈물을 흘리다가 마를 정도의 아픔도 만날 수 있겠지요. 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살아가야만 하는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사는 게 원하는 대로 뜻대로 되지 않음..

시, 소설, 산문 2024.10.07

전쟁의 슬픔

전쟁의 슬픔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 (파주: 아시아, 2012) 전쟁을 다룬 소설이다. 모든 역경을 다 이겨내고 사랑을 지켜내고 행복한 여생을 만나게 되었다는 해피 엔딩 작품이 아닌, 전쟁의 모든 총탄을 피하고 영웅이 되었다는 그런 종류도 아닌 전쟁 소설. 행복할 수 있을지, 앞날을 전혀 알 수 없는 전장 속에서 버텨내는 그 하루가 가감 없이 담겨 있는 문장이 삶의 덧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꿈 많던 젊은이가 쓰러져 가는 모습을 무감각하게 바라봐야만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 하나만으로 버텨내던 삶이 무너져 내려가는 주인공이 됨에도, 그럼에도 한 줄기 희망을 찾고자 방황하던 잿빛 속 그림도 삶의 모든 순간을 담아낼 수 없었다. 제국주의와 자국 최우선주의 혹은 이념에 따른 체제의 신격화..

시, 소설, 산문 2024.09.29

행복한 사람

행복한 사람 나태주 글, 이경국 그림 (인천: 템북, 2024)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건 얼마나 행복할까.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꿈을 위해서 참고 또 해내고 살아가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었나. 시인 나태주 선생님은, 학교 선생님으로서 살아갔다. 그러나 본인의 꿈을 위해서 일도 해내고, 시도 써 내려갔다. 꿈꾸던 삶이 막 펼쳐지지 않았음에도 실망으로 멈추지 않고, 살아냈다. 어느덧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에 맞이하게 된 아픔 그리고 다시금 살아내게 된 삶과 시는 모든 걸 돌아보게끔 하지 않았을까. 작은 생명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음을 알고, 배우고, 시로 표현한 시인.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행복의 비결을 알려주고 싶어서, 좋은 그림과 함께 우리에게 비밀을 살짝 보..

시, 소설, 산문 2024.08.09

조각게임

조각게임 나윤아 지음 (서울: 한낮의 단비, 2023)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면서 책을 펼쳤습니다. 어젯밤에 내일 무얼 읽을지 고민하다가 잡은 소설책(서울국제도서전에서 담아왔고, 출간할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조각게임>은 청소년을 위한 아니, 모두를 위한 소설이라고 할까요. 책의 편집 형태는 장평 자간이 넓으며, 글씨도 큽니다. 또한 문장이 영하고 프레쉬(?)해서 지루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청소년 소설을 표방하기에, 어렵지 않은 언어와 또래의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전에 귀여니의 소설을 생각하며 이모티콘체 남발하는 그런 것은 아니니 오해 금지하시고요. #의 잦은 등장이 불편할지 모르는 분들도 있겠지만, 타게팅 독자가 청소년임을 유의한다면, 인스타스러움은 오히려 편안함을 만드는 장치이지 ..

시, 소설, 산문 2024.07.24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파주: 교유서가, 2022)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건물을 가게 되면 가끔이나마 마주하게 되는 이들이 있다. 될 수 있으면 고객과 마주치지 않는 동선으로 건물 바닥과 유리를 닦는 노동자. 때로는 선생님, 때로는 여사님이라고 불러드리는 여성 노동자. 과거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아직도 노동으로서의 청소를 대우하기보단 저임금노동자라고 불리지 않을까 싶다. 그 근저에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기에, 기피 업종이라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성실함으로 삶을 지켜나가기 위함으로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은’ 이들이 존재하기에 건물의 청결함은 유지되고 날마다 누리게 된다. 선진국의 상징(?!) OECD 가입국의 21세기 모습.txt 이런 나에게 근본..

시, 소설, 산문 20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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