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소설, 산문

이 정도면 충분한

읽고쓰고나누고 2023. 9. 2. 08:27

이 정도면 충분한 조희선 지음 (서울: 홍성사, 2021)

 

어느새 뒤돌아보니 살펴볼 게 많아졌다면 나이가 제법 많아진 사람이 되었다는 표지다.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느라 애써 외면하던 일련의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는 나이기도 하고. 꿈을 꿀 수 있다면 그보다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발견할 수 있을까.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이루어야 할 과업들이 참 많다.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어딘가에 취업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도 하면 좋겠다 싶은 게 많은 삶이다. 어쩌면 <이 정도면 충분한> 삶을 원하기에 이 책을 집어 들었는지 모른다.

 

물론 페친이자, 서점지기인 대표님 덕분에, 출장 중 늦은 시간 서점에 들르도록 배려해주셨고, 책을 만나게 되었고, 한참이 지난 이번에 읽었다는 게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순간이었지 않았을까. 책이 나를 부르는 시간이 된 거다.

 

자동차 기어를 D에 놓은 것처럼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생은 자주 P에 놓도록 만든다. 그 멈춤이 의도된 행동이라면 좋겠지만 불가피하게 만나는 사건들로 인해서 그렇다. 혹은 R에 놔야 하는 기어처럼 뒤로 가게 만든다.

 

빠른 시기에 이루어졌던 결혼과 자녀 양육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인생의 흐름은 순리대로 흘러간다. 다만 거기에 내가 어디쯤 위치했는지, 또한 삶이 버거운 순간일지는 각자가 다르기에 힘든 일들이 겹쳐서 연속으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부재가 주는 아픔은, 개인마다 다른 시간의 흐름으로 해소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음을 안다. 슬픔 총량의 법칙이라고 하면 좋을까. 기억이 소거되기까지 필요한 소정의 시간이 있다.

 

저자의 삶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담겨 있는 책은, 나 또한 인생의 오후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상기케 한다.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손으로 잡을 수 없기에 시나브로 자녀들도 내 품을 떠날 걸 알기에 인정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나이가 들어 가며 미워지는 모습일지라도 활짝 웃는 얼굴들을 찍어둬야겠다. 104쪽

 

다만 저자의 문장처럼, 자신을 스스로 기억하는 때에도 혹은 앞으로의 나의 부재중에도 자녀들은 좋은 순간만 떠올릴 수 있도록, 웃는 모습을 남겨두면 좋겠다 싶은 읽음을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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