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김훈 글, 이강빈 사진 (서울: 생각의 나무, 2007)
어릴 적 추억이라고 해야 하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사방팔방 쏘다니던 나날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여자아이 취향의 형광 연둣빛 바디가 싫어서 난리를 쳤던 못된 놈이었던 나. 그래도 그걸로 열심히 몰고 다녔다. 어느덧 업그레이드되어 나름의 MTB 자전거를 타고선 더더욱 멀리 나아갔고, 튼튼한 하체를 얻어냈던 그 시간.
물론, 어느새 그 자전거들은 엄복동의 나라답게 사라졌거나 오래되어 고철로 팔려나갔다. 지금도 동네에 방치된 자전거들을 보면 그런 운명에 처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 나의 물건이 아니니 무심하게 바라봐야 함을 되새겨본다.
고등학교 시절쯤, 학교 도서실에서 읽을 책을 추천해 주셨던 선생님 덕분에 읽게 되었던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는 특유의 묘사와 더불어 무덤덤한 느낌의 문장이 나를 매료했다. 소설이지만, 문장에서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감정이 말이다.
세상에나 자전거 여행도 좋아했던,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만난 풍경과 관련된 글을 쓴 작가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고, 그 작품을 선물로 받았다가 이제야 읽었다. 일부러 조사하지 않고 김훈 작가의 글을 읽어가며 느끼게 된 점은 우리 역사에 깊은 관심을 둔 분이라는 것과 엔진의 위대함을 찬양하지 않는 - <설국열차>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 , 두 발의 힘으로 달려가는 사람임을 보게 되었다.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17쪽
소설가의 운명과도 같다고 믿는 주변에 대한 관찰, 그리고 집중력은 독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자전거를 타고 공기를 느끼고 사람을 만나는 게 문장을 만드는 동력이 되는 걸까.
특히, 충무공이 마주했을 명량의 그 자리에 서서 바닷바람과 함께 삶을 버텨내고 싸우고 글을 썼을 모습을 그려냈다. 그래서 과거 역사의 영웅적 인물이었던 이순신을 지금 내 앞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만나게 해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김훈 작가는 그 바다에서 소중한 삶을 잃어갔던 이들을 위해 또 다른 글을 썼다 -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에서 에세이 한 편을 만날 수 있다 -.
사계절을 통해서 전국을 누비며 달렸던 이야기이자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 자연과 역사에 대한 소개, 그리고 익숙해지면 안 될 아픔의 기억을 보게 해준다.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지 않을까. 덕분에 낯선 이들과의 조우에 걱정이 많아지는 요즘을 조금이나마 따사롭게 만든다. 아, 다시금 달리고 싶은 가을이 온다.
※ 요즘은 '문학동네'에서 책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