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소설들 56

로기완을 만났다

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지음 (파주: 창비, 2024) 리마스터판 이니셜 L이 나온다. 분명, 로기완이 나오는 소설이라고 제목에서 읽어졌는데 당황했었다. 주인공은 바로 직전까지 방속 작가였다. 그러다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마주하게 된 상황에서 삶의 의미가 흔들렸기에 다시금 의미를 찾아서 나아가길 바랐다. 그러다가 톨레 레게의 문장과 이야기를 만났다. 그래서 이니셜 L을 찾아 나선다. 삶의 이유와 길을 묻고 글을 쓰려한다지만, 사실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서서히 밝혀지고 진행되는 이야기 가운데 투사되는 미안함과 그리움과 사랑은 이니셜 K에게까지 이어진다. 이 이야기가 주는 강렬함이 OTT 채널의 영화로까지 이어졌다(요즘 친구들은 책보다 OTT 속 송중기를 떠올릴지도). 이니셜 K는 감정 ..

시와 소설들 2025.04.27

행복한 위선자

행복한 위선자 맥스 비어봄 글 조지 셰링엄 그림 홍종락 옮김(서울: 사자와어린양, 2025)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을 아시지요.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생각해 보면 사람은 과연 태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만들어지는 존재인지 묻게 됩니다. 혹시, “Manners, Maketh, Man”인가요. 살아가면서 다양한 위치와 장소로 인하여 정말 다양한 페르소나를 착용해야만 합니다. TPO를 맞추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하지요. 이런 가운데 책의 주인공은 정말, 나쁜 X였습니다. 특이점으로는 자신을 숨기지 않는 진솔한 나쁜 X. 이런 존재가 어느 날 한순간 사랑에 빠져 가면을 쓰게 되고, 결국에는 진정한 사랑의 사람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글입니..

시와 소설들 2025.04.18

교회 교향곡 (다시 읽기)

교회 교향곡 황재혁 지음 (서울: 바람이불어오는곳, 2024) 다시금 또 읽는 책이란, 재밌거나 인상 깊거나 다시 읽고 싶어진 책입니다. 이 책이 그랬습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을 말하던 사람의 이야길 담고 있으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인물 말고도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도 메인 등장인물입니다. 또 이야기를 열어가며 등장하는 ‘폴 틸리히’와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윈스턴 처칠’도 있고요. 아, 언급되는 ‘칼 바르트’도 있습니다. 음악이 흐르는 천국의 카페에서 다양한 주제로 담소를 나누는 장면 하나하나가 아름다웠습니다. 교향곡처럼 구성된 이야기와 이야기에서 나오는 BGM 같은 음악을 책이 아니라 영상에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지 궁금하고요. 책과 음악과 커피의 삼위일체는 완벽했습니다. 아,..

시와 소설들 2025.04.01

북적대지만 은밀하게

북적대지만 은밀하게 박소연 지음 (서울: 위즈덤하우스, 2023) 은밀하게 위대하게(X), 북적대지만 은밀하게(O) '책읽는다락서원책방'에서 담아왔던 얇지만 강력해 보이는 양장본. 드디어 펼치자마자 다 읽어버린 소설이자 픽션이자 현실감이 넘치는 이야기였다. K-직장인의 애환과 꿈을 다 담아낸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천천히 빨리 먹어”를 외치거나 “느리지만 빠르게” 걷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최애의 스트롱 사이다 같은 글이었다. 썸남썸녀 같은 “분위기 좋아서” 로맨틱한 이야기를 그려야만 하는 K-드라마가 아니라, 빠르게 진행하는 미쿡 스타일 문장이 좋았다. 군더더기 없이 흘러가는 내러티브가. 더하여서, 책 속의 책처럼, 같은 내용의 소설을 바쁜 현대인에게, 눈치 보이는 직장인에게 읽기 쉽게 한 ..

시와 소설들 2025.03.27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 김이랑 지음 (서울: 현대문학, 2024) 시와 에세이가 함께 담겨 있다. 또한 로컬을 외치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로컬화된 글을 만나는 시간이 된다. 대전에서 살지만 익숙한 윗동네의 지명들, 시인에게는 익숙한 이름들이 담겨 있다. 우리 동네에도 공감하며 읽어갈 문장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마치, “소제동 길을 걷고 있어”라고 썼으면 좋겠다. 걸음에 담긴, 거리에 담긴 아름다움과 슬픔과 추억이 남기를.

시와 소설들 2025.03.11

슬픔은 오랜 시간 건조된 땅콩처럼 부서져 내리고

슬픔은 오랜 시간 건조된 땅콩처럼 부서져 내리고 차빛나 지음 (서울: 세움북스, 2024) 간만에 시집을 샀었고, 또 읽었다. 천천히 읽어 내려가도 마음이 복잡해지거나 생각이 많아지는 시집 속에서 무슨 시를 떠올리며 생각을 더 하게 될지 궁금했다. 담아왔던 시집은, 북토크 현장에서 판매되었던 특판이었다. 싱어송라이터의 시집이라니. 시에다가 멜로디를 얹으면 노래가 될 수 있기에, 시는 음악을 담고 있는 가사다. 사랑을 담고 있는 가사다. 책 표지는 우레탄 마감이라서, 까끌까끌한 느낌에서 콩깍지가 생각났다. 그 안에 담긴 콩이라는 알맹이, 한 알의 콩이 성장해 가는 이야기가 담긴 시집. 그 콩은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날마다 지혜와 키가 자라났던 것처럼, 무수한 햇빛과 어두움, 따스함과 서글픈 빗방울을 머금은 ..

시와 소설들 2025.01.25

교회 교향곡

교회 교향곡 황재혁 지음 (서울: 바람이불어오는곳, 2024) 음악 좋아하시나요? 저는 특별히 가리지 않고 듣기는 합니다만 클래식을 찾아서 듣는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기억 속에는 아버지께서 오디오로 클래식 음반을 항상 듣곤 하셨지요. 그러나 저는 언제나 대중음악이 좋…. 그럼에도 오페라, 칸타타, 실내악 같은 단어는 들어봤었습니다. 음악의 조예가 깊은 이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면서 신학에도 그러한 분이 계시고요. 본회퍼가 그랬습니다. 본회퍼, 그의 이름이 오용되곤 하지만 그만큼 어디서나 주목하게 되고 본받고 싶은 목회자, 신학자, 신앙자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책은 읽거나 소장하거나 합니다. 그러다 발견한 반도의 소설의 본회퍼. 무려 잘 모르지만, 피터 드러커와의 환담이 담긴 이야기라뇨. 책..

시와 소설들 2025.01.22

계엄

계엄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서울: 정은문고, 2024) 요즘은 MZ 세대가 대세인 시대입니다. 이렇게 2000년대 이후의 친구들과는 다르게 살아온 일명 86세대도 있고요. 바로 이분들이 주로 활동하던 7080 노래방이 생각나는 시대가 존대합니다. 세대를 넘어서는 시대의 차이, 과연 그런 제가 70년대 대한민국의 삶과 계엄령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특히, 비상계엄이 발동되었다가 해제되고 다시금 촛불이 일어서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간 속에서 말이지요. 이번에 읽었던 책은 다분히 외국인(일본인)의 시선으로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바라보고 느끼고 만났던 이들에 대한 적당량이 사실과 가명과 소설의 문장을 담아서 그려냅니다. 너무 무섭지도, 그렇다고 따분하지도 않게 따스한 햇살도 비추는 서..

시와 소설들 2024.12.14

프롤레타리아 여인의 밤

프롤레타리아 여인의 밤 이숙경 지음 (고양: 인사이트브리즈, 2023) 영혼이 성장하는 시간은 평생에 걸침이 아닐까. 그렇다고 모두 다 성장하기 위해서 달려가야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내지르지 않더라도 광속으로 나아갈 테니까. 그렇기에 사람은 살아가면서, 사랑하면서, 서롤 보면서, 서늘해지고, 살아 내 본다. 이숙경 작가의 작품을 여럿 읽으면서 항상 어느 부분에선가는 차갑고, 무겁고, 관능을 꿈꾸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항상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그려내는 특유의 문장이 다가온다. 이 소설에서는 조금 더 그녀만의 종교적 색채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조금 더 멀리서, 주변에서 느껴지는 죽음과 삶에 대한 미묘한 관전의 마음이 느껴질 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작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여러 감정과..

시와 소설들 2024.12.10

파친코

파친코 1, 2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서울: 인플루엔셜, 2022)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순간들 가운데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사랑만큼 소중한 게 어디 있을까. 사랑이 전부라 믿고, 말하고, 나누고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이었다. 독서 모임 덕분에 마주하게 된 그 유명한 작가와 역자의 글을 마주하게 되었다. 뛰어난 번역으로 막힘없이 읽어 내려가는 문장과 그 가운데에 또 마주하게 되는 인생의 역사. 세상의 중심에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또한,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해서 희생하는 이도 존재한다. 초월적인 존재를 향하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이도 존재한다.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자리가, 삶의 자리(Sitz im Leben)다. 이삭과 요셉과 노아와 모자수(모..

시와 소설들 2024.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