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종교학

정통을 다시금 읽고

읽고쓰고나누고 2024. 6. 5. 23:36

정통 G. K. 체스터턴 지음 홍병룡 옮김 (서울: 상상북스, 2010)

 
읽었던 책을 다시금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너무나 좋았던 내용을 되돌려 보고 싶어서. 읽었으나 기억에서 멀어진 부분을 상기하고 싶어서. 어딘가 글에서 인용하기 위한 독서까지. 정말, A~Z까지 여러 이유가 생긴다. 그중 하나가 독서 모임으로 인한 재독이 아닐까.
 
어떤 책은 읽으며, 쉽게 다가오지 않는 문장과 단어가 존재한다. ‘이거 혹시 나의 독해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길 때에 위안(?)이 된 것은, 다른 사람들도 읽는데 힘들어하셨다는 소식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 진리라고 할까. 내가 읽기 힘들고 어려운 부분은 다른 이도 마찬가지라는 ‘복음’.
 
다시금 읽어 내려가며, 밑줄을 그었던 부분을 살펴보게 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부분에 공감하게 될까. 대다수의 부분은 유지되었고, 한두 가지가 사라지고, 새롭게 두세 가지를 칠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커다란 변화를 갖지 않는 문장들. 문장 자체가 갖는 힘이 커서 그랬으리라. 클래식이 되는 이유는 변하지 않은 문장의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과연 사자는 어린양과 함께 누우면서도 그 자신의 왕 같은 사나움을 그대로 보유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교회가 풀려고 했던 문제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이룩한 기적이다. 200쪽

 
<나니아 연대기>의 '아슬란'이 생각났고, 출판사 ‘사자와어린양’이 생각나던 문장. C. S. 루이스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저널리스트가 아니었을까. 앞선 시대의 작가보다 다양한 자료를 접할 수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현대의 작가보다는 접근성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 가운데 많은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표현하는 것은 독서의 내공도 상당함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보다 느리게 다시금 완독한 책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체스터턴이 지금의 시대에 다시금 나타나서 기독교를 바라보면 무슨 내용의 <정통>을 써 내려갈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정통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지옥에 빠지기 직전에 위로 도약하게 만들어준다. 306쪽

 
 

반응형

'신학, 종교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 전도  (0) 2024.07.07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0) 2024.06.12
자연신학  (1) 2024.05.15
고난과 하나님의 선교  (0) 2024.05.07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0) 202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