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종교학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읽고쓰고나누고 2024. 6. 12. 20:38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홍병룡 옮김 (서울: 포이에마, 2011)

 

1단, 2단, 3단 기어 변경하기를 좋아하는 아저씨.

일단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말 많은 아저씨.

이단이라면 몸서리치던 아저씨.

 

제 이야기를 조금만 더 적어 보자면, 처음은 같으나 끝이 다르다고 배웠던 이야기이자 돌이켜보면 두어 번 포섭하려고 접근했던 그들이 이단이었습니다. 여러 동인이 이단에 관심을 두도록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책장 속에 갇혀 있던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얼마 전 재독 하였던 체스터턴의 <정통>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체 정통과 이단은 얼마나 다를지 학문적인 논의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책장에 있던 이 책은 2011~2012년도에 ‘기신서적’에서 샀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포이에마 벽돌 책 3권이 멋져 보였고, 언젠가 읽어도 좋을 내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판권 부분을 살펴보니 현 ‘비아토르’의 대표님이 계시던 시절이네요 :) 오랜 시간의 기다림 덕분에 책등은 노랗게 익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내지에서 나는 종이 냄새는 더더욱 고전을 읽는 맛이 나게끔 합니다. 벌써 10년도 넘게 흘러버린 시간이 되었고요.

 

제가 읽을 수 있게 된 신약성서가 정경화 되고 있던 시기에는 다양한 문서가 읽어졌고, 마찬가지로 정통이 세워지던 시기가 아니었을까요. 저자는 이를 상기하도록 하면서 논지를 이어갑니다.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는 이단의 기원, 다양한 배경, (시험에서 만나던) 에비온주의, 도세티즘, 발렌티누스주의, 아리우스주의, 도나투스주의, 펠라기우스주의 등. 책의 도입부에서 흥미로움을 더하는 <다빈치 코드> 이야기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는 학자들의 이름까지.

 

집어 든 책에서 발견한 보석과 같은 문장,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 그래서 정통과 신앙과 이단은 무슨 관계냐 물어보신다면.

 

우리가 제아무리 신학적 정확성을 겨냥하고 하나님의 실재와 기독교 복음을 붙들고 씨름해도 결국 인간의 정신은 한계에 봉착하고 좌절을 맛보기 마련이다. 51쪽

 

라는 부분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현대의 이단이 아닌, 최초기의 교회사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단은 그리스도인을 미혹하기 위해서 존재케 된 것이 아니라, 더욱더 신학적 정확성을 더하고 이웃에게 혹은 지역 문화에 알맞은 모습으로 나아가려고 발버둥 쳤던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좋아 보였던 모습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정통이 아닌, 신학적으로 다른 결이 되어버림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읽은 뒤에 나타난 여운은 다시금 학교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더불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 정치 및 권력의 입김이 존재하는 세계 내 존재라는 것도요.

 

그러니 더더욱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신앙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끝은 오직 그분만이 아실 테니까요.

 


 

덧글

 

⑴ 저자의 이름 표기는 통일성을 위하여 ‘알리스터 맥그라스’로 기록하여 둡니다. 책에는 ‘알리스터 맥그래스’로 되어 있습니다.

⑵ 번역어의 표현으로는 요즘 자주보던 ‘제의’ 대신에 ‘제전’이 사용되었습니다. 두 단어의 뉘앙스가 다르겠지만, 저는 ‘제사’ 전문가가 아니오니 이의를 ‘제기’하신다면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⑶ “아는 선교사님과 성경 공부해 볼래? 선교 나가기 전까지 훈련하셔야 해서”, “꿈을 꿨어요 당신의 신앙이….” 이런 형태의 접선을 받았다면 가까운 목사님(혹은 전도사님, 간사님)에게 확인받으세요. 더 늦기 전에!

⑷ 저는 불가지주의자 아닙니다.

⑸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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