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신학 에밀 브루너, 칼 바르트 지음 김동건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21)
정말 대단한 신학자들의 지상 논쟁을 만나면 재밌는 글이 되리라 생각하며 읽게 됩니다. 다만 논쟁이 벌어지게 된 상황과 당시의 분위기, 신학자마다의 논점을 너무나 모른다면 전혀 노잼이겠지만 말이지요. 그러나 이번에 천천히 읽었던 책은 그 유명한, 에밀 브루너와 칼 바르트입니다.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신학교를 다녀보았다면 마구마구 들어봤을 시대적 배경과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역자도 제가 좋아하는 교수님이시네요. 어쩌면 <빛, 색깔, 공기>의 아버님의 나이와 비슷하게 나아가고 있을.
책으로 돌아와 봅니다. 역자분의 개정판 서문과 더불어 옮긴이의 말로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이어갑니다. 이어지는 서문에서는 조금 더 글을 읽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설명을 합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는 개정된 <자연과 은혜>가 아닌, 원저자의 바람대로 개정 되지 않은 판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의 원래 의도대로 읽고 생각하길 바란달까요.
1부에서는 에밀 브루너의 <자연과 은혜>, 2부에서는 칼 바르트의 <아니오!>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브루너의 글에 대한 바르트의 반격이 담기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적었듯이 오해받은 부분을 수정한 자연과 은혜의 개정판이 있다고 합니다. 시작하는 브루너의 글이 바르트와의 차이를 밝히며 시작됩니다. 워낙에 이 둘의 논쟁에 대해서 다루어진 좋은 글이 많음을 알기에 제가 무언가 덧붙일 수준의 사람이 아니기에 감상을 적어봅니다.
도입부 글은 짧고 명료하게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기 위해서 웜업을 합니다. 두 신학자의 글 가운데 본론 부분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글을 사용하여 진행하므로 신학적인 이해가 없다면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브루너의 글은 본론 부분에서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부분들이 꽤 있었습니다(어쩌면 자연계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칼뱅과는 거리가 존재하는 웨슬리안이기에 그럴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단호한 바르트의 글은 “그건 아니고~!”라는 문장이 생각나는 글이었습니다. 역자께서 좋은 번역을 위해 노력하신 흔적이기도 하겠지만, 브루너의 글보다 좀 더 잘 읽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어쩌면 바르트의 문장이 조금 더 저에게 가깝기 때문이 아닐지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바르트의 팬은 아닙니다.
물론, 자신이 속한 교단과 신학의 입장에서는 브루너만이 아니라 바르트도 부족하게 여겨질지 모릅니다. 각자, 신앙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그럼에도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에 대한 신학자들의 지상 논쟁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신학은 어디에 가까운지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얇지만 깊은 논의이기에 독서만으로도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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