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문법 소준철 지음 (파주: 푸른숲, 2020)
자발적 가난에 들어서지 않는다면 만나고 싶지 않은 게 가난이다. 그런데 가난에 들어서게 되는 경로를 문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내가 걸어가는 길이 그곳이라면 말이다.
가난하고 싶어 가난해진 사람은 없다. 127쪽
이번에 읽은 책에서 만나게 되었던 강렬한 문장이었다. 문장의 길이가 짧을수록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하는 것일 텐데, 자기의 뜻대로 된 경우가 얼마나 있겠냐는 선언으로 읽어졌다.
책은 여러 현실을 보고 느낀 저자가 특정한 인물을 창조해낸 이야기로 진행되며, 그 공간과 시간에서 포착되는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고 사회학적인 부분들을 설명해준다. 광의적인 차원에서의 사회 문제 접근도 필요하겠지만, 개인의 삶을 따라서 바라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의 시도는 통계 내에서 어떤 숫자는 낮추고 어떤 숫자는 높이는 데에 맞춰져 있다. 정작 필요한 건, 노인의 생활을 개선할 실질적인 방편이다. 50쪽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통계 수치로만 바라볼 때는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상대적으로 더욱 취약한 노인 중에서도 여성의 삶을 본다. 제도 아래에서 누릴 수 없는 회색 지대의 존재를 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위에서 마주치지만 애써 모른척하는 존재가 책에서 그려내는 가상의 인물, 영자씨와 같지 않았나 싶다. 간혹 폐지를 엎으면 도와드리지만, 그 이상은 나서질 않는 모습으로 말이다.
나와는 다른 모습의 나이와 삶의 자리이기에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안다. 그래도 함께 살아가는 사회 내 존재임을 고려할 때,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단 한 명의, 전문가만의 노력이 아닌 모두가 돌아봐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이미 우리 사회는 초고령 사회가 아닐지).
그래서 영자씨도 혼자 삶을 살아내지만, 주변인들과의 조우, 때로는 불편한 동행도 한다. 그리고 한솥밥을 지어먹는 모습도 보게 된다. 가난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우리와 다르지 않고 날마다 최선을 다해 살았고, 살아가며, 살아갈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후, 과연 나는 ‘가난의 문법’을 해체할 수 있는 동료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지 묻게 되는 시간이었다.
'일반 서적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술시간에 가르쳐 주지 않은 101가지 (1) | 2024.05.06 |
---|---|
경이라는 세계 (1) | 2024.04.20 |
커피, 코카 & 코카콜라 (0) | 2023.09.06 |
풍운아 채현국 (0) | 2023.08.12 |
책 읽는 삶 (1) | 2023.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