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소설, 산문

종이 동물원

읽고쓰고나누고 2023. 6. 13. 22:17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서울: 황금가지, 2018)

 

어려서 해 본 즐거운 활동으로 종이접기가 있다. 라떼 이즈를 발하면, 비행기 좀 접어봤고, 동서남북(?)도 만들고, 종이학은 받아봤.. 아무튼 그랬다. 그 무엇보다 종이접기의 최고봉으로는 코딱지들이라고 말하던 EBS의 선생님이 최고였지만.

 

이번에 읽어본 단편소설 모음집은 겉표지에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종이호랑이가 쳐다본다. 마치, 작품 속의 호랑이가 뛰어오르려고 준비하는 자세처럼 말이다. 자세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검색해 보면 잘 나오니 확인해보면 어떨지.

 

모쪼록 이 책의 표제가 된 동명의 작품은 SF와 관련된 상을 3관왕이나 차지할 만큼 흥미로운 작품임이 틀림없다. 중국계 미국인이 그려낸 세계를 다시금 한국어로 담아냈음에도 묻어나는 그만의 색깔이랄까. 14개의 각양각색의 작품들은 달콤하고, 씁쓸하고, 애절하고,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작가만의 그림을 그려내게 된다. 마치 요술로 살아난 종이호랑이처럼.

 

그의 문장이 갖는 특이점들은 작가의 삶을 따라서 움직인 궤적이 나타냈으리라 생각해봤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의 삶. 프로그래머로 시작하여 변호사의 삶을 살았고, 작가로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을 테니까. 그래서였을까. 책의 초반에 있는 작품, 「상태 변화」에서 만난 문장이 좋았다.

 

집에서 전기를 읽으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남들의 삶을 통해 자기 삶을 잊기 위해서였다. 120쪽

 

내 기억에는 어려서 전기를 읽었던 이유는 위인을 닮기 위해서, 배우기 위해서, 독후감을 위해서였는데 작가의 생각이 담긴 화자에게는 삶을 잊기 위한, 고단함을 덜어내기 위한 모습으로 읽어졌기 때문일까. 삶이 무료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아마도 고통조차 반복적이라고 각인되는 시점일 것이다. 그렇다고 유승준의 <비전>을 부르진 않으리.

 

개인의 고독과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의 대비, 서양과 동양의 조우를 만날 수 있는 켄 리우의 작품은 환상이라 믿고 싶은 현실을 담기도 해서 더욱 공감하는 게 아닐지 돌아본다.

 

언제나처럼 좋은 책을 소개해 주시는, 그리고 얼마나 많은 책을 사 갔다고 이 귀한 작품을 선물로 주신 서점지기님께 감사드리며.

 

겉표지 관련 기사: https://v.daum.net/v/20220112030120585

 

띠지 제거 전
발톱이 보이는 제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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