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텍스트 필리스 트리블 지음 (고양: 도서출판 100, 2022)
의도하지 않은 슬픔과 고통을 만나는 것은 아픔을 만드는 일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공포 속에 살아가는 또 다른 존재로의 나아감이 되는 것일까. 성서는 텍스트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불경건해 보이는 표현일지라도).
성서는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문서이기에, 여성의 시각을 담기보다는 남성 위주의 시각이 많이 담겨있을 것임을 감안하고 읽고 있기에, 나의 독법에는 여성주의적인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조차도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련의 교육을 통해서(여성신학 수업을 딱 한 과목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겼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계 현실을 돌아보자면 남성보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이 있다. 당연하게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곳에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다수로 있는 아이러니함을 보게 되기도 한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 교단별로 바라보는 신학적인 시각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함도 알고 있다. 그러나 현 시대를 바라보는 상황 신학적인 대응으로 본다면 여성을 위한 무언가를 해야 하고, 그들의 대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여성 대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성으로서의 성경 읽기 방식이라던가 말이다.
그 즈음에서 읽을 만한 아니, 읽어야만 하는 필리스 트리블의 명저가 40주년 기념판으로 출간되었다. 고혹적인 색깔의 어두운 보라색 계열의 겉표지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보라색은 누구의 색인가. 황제의 색이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하는 이들이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다. 또한, 밤이 깊어지면 검은색이 아니라 짙은 보라색을 볼 수 있음을 알기에 어둠을 표현하는, 공포를 느끼게 되는 컬러가 아닐까. 뒷면의 흐릿한 그림에 대한 설명이 책날개에 적혀 있다. 왠지 더 마음을 쓰게 만드는 설명을 보여주면서…….
과연 이러한 가운데 여성은 성서를 읽으며(혹은 들으며)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특정 부분의 본문은 건너뛰거나 혹은 들어보질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왜 그런 것일까. 여성을 위해서일까. 총 4장에 걸쳐서 아프지만 알아야 하는 내용을 다루는 이 책의 초입에서 만나는 문장은 아픔을 극대화시킨다. 조금씩 읽다가 또 한 번의 아픔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신앙공동체를 위한 희망의 말씀은 어디에 있을까? 13쪽
슬픈 이야기에는 행복한 결말이 없다. 29쪽
우리는 밝은 미래, 기승전결 형식의 내러티브를 읽고 보장받는 승리의 삶을 기대하며 성서를 읽는다. 그러나 여성의 시각으로 볼 때에 가슴이 무너져 내릴 부분이 읽어진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보면서 아름다운 천국을 꿈꾸기보다는 현실판 ‘지옥’을 보게 되는 것 같다. 바뀌지 않는 현실과 나에 대한 모욕, 그리고 잊힌다는 두려움까지 말이다.
노랗게 변할 것 같은 심정을 이겨내고선 다시 읽는다. 그리곤 다른 분들이 리뷰에서 적는 것처럼, 이 책을 읽은 뒤에는 다시금 앞으로 돌아와서 서문을 읽게 된다. 본문에서 후벼 파는 아픔을 보상받고 싶어서, 4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미묘하게 달라진 것 말고 없는 현실을 보기에 그런 것일까. 생각을 가다듬고 읽었던 내용 중에서 밑줄 친 부분을 적어본다.
남자에게 하면 그런 행위가 고약한 것이고, 여자에게 하면 남자들 눈에 “좋은” 일이다. (중략) 남성들 사이의 갈등이 여성들의 희생으로 해결될 수 있다. 115쪽
나에게는 안 되고 너에게는 허용된다고 말하는 본문의 폭력성에 대해서 정당성을 부여한 것처럼 읽어지는 텍스트를 보며 저자는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이런 상황은 전쟁 중에 벌어지는 참극과 다른 점은 있는가. 아니, 지금의 상황은 전쟁과 같다고 말하는 것인가. 폭력에 대하여 다른 해결책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너무 유감스럽지 않은가.
이 책에서는 주인공으로서의 여인이 4명 등장한다. 이름이라도 알 수 있는 2명과 이름조차 알 수 없는 2명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다. 그들의 희생과 아픔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돌아볼 수 있기를 그리고 기록된 성서에서 읽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불편할 수 있는 진실을 기록한 성서, 그리고 당시의 시각으로 읽기를 계속해야하는지 고민할 수 있기를 무엇이 보다 더 예수께서 원하시던 것인지 돌아볼 수 있기를 이 책을 통해서 만나기를 원하며 글을 마친다.
침묵은 무능함과 공모죄를 덮는다.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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