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의 고독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서울: 싱긋, 2021)
대한민국에서 대략 절반은 수도권에서 살아간다. 나머지 인구도 도시에 많이 산다. 도심의 공기와 바쁨은 보다 더 빠르고 편한 이동을 원하고 사용한다. 걷기 보단 뛰고, 뛰는 것보다는 타고 다니길 선호한다. 느림의 미학이 아닌 초격차를 원한다고 해야 할까.
경쟁에 치이고 힘든 삶이다. 그래도 누구나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내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 시켜주는 것, 바로 지금 이곳에 서 있다는 것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걸음을 전진시키며 목표를 향해 가기에 자신의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고 한다.
책의 저자도 성실하게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다.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건은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패스트푸드 같은 삶에서 삶의 여유를 누리는, 슬로푸드 같은 삶으로 달라져야만 했다.
언제부터 길이 생겨났을지 알 수 없다. 가이드의 인도를 따라서 트래킹을 시작해보면 아득히 먼 지점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다시금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리고 함께 걸어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길은 듣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야 하므로 더 그런 것은 아닐까.
길은 인간이 걸어서 여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30쪽
나만이 걸어온 혹은 네안데르탈인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길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두 발로 일어서기까지 걸렸던 수많은 시간과 직립보행이 가능해지고 나서도 생존을 위해 나아가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일까. 아마도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부터 안주하는 삶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 즈음부터 어딘가로 나아가기보다는 정주하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가만히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노마드적인 모습을 이제는 사이버 세상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인지 안타까워진다. 아니, 저자의 말을 잠시 빌려와보면 다음과 같다.
실제로 스마트폰은 우리가 길을 잃을 수 있음에도 이제는 더 이상 길을 잃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황된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당신이 길을 걸을 때, GPS는 지도나 당신의 방향감각, 지형을 읽고 길을 추적할 줄 아는 능력보다 신뢰할 만하지 않다. 148쪽
기억 속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우리의 감(어쩌면 DNA 안에 내재된)은 기계보다 정확할지 모른다. 다만 사용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혹은 사용할 일이 없어져서 녹슬어버렸다고 생각될 뿐이다. 감사하게도 이 숨겨진 능력을 붐업 가능케 하는 오리엔티어링(지도와 나침반만을 통해서 길을 찾는 레포츠)이 있다.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싶다.
모질게 만난 현실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은 인간 본연의 휴머니즘이라 생각한다. 추억의 오두막을 그려보며 트래킹을 하고 여행을 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준비시킨다. 그리고 소설 『오두막』처럼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서 걷는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본향을 찾아가는 연어처럼….
누군가가 죽더라도 삶은 계속된다. 202쪽
녹색을 머금고 있는 지구는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놓인 길은 누군가가 지나갔던 흔적이다. 거기에 나의 발을 올려놓아본다. 그 길을 따라 걷게 되면 목적지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아니, 천천히 걷다보면 고독 속에서 삶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노르웨이의 숲, 코로나로 인해서 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 역시 저자의 말을 귀담아 듣게 된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장소다. 206쪽
여행을 떠나게끔 권하는 저자의 글을 읽었다. 역시, 주변부터 두 발로 걷고 싶어진다.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며 오늘은 어떤 햇빛이 내려쬘지, 구름은 어떤 모양일지 상상하고 싶어진다. 서두르다가 놓치지 말아야겠다. 지금 여기에서의 시간들을 또한 코로나로 보다 더 밀착해서 보낸 공간의 기억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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