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의 탄생 헬렌 피빗 지음 (파주: 푸른숲, 2021)
‘냉장고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는’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시작하는 오히려 제목보다 부제가 솔깃하게 읽어지는 책은 카피라이터의 놀라운 마케팅 능력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가전제품을 통해서 과학 기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그려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기 때문입니다.
얼음장수로부터 시작해서 쿨한 냉장고의 미래까지를 그리고 있는 이 책은 전반적으로 파란 색감으로 구성된 시원한 느낌의 책입니다. 냉장고의 그 시원함을 담아내고 있는 디자인이랄까. 큐레이터의 전문적인 큐레이션을 통해 펼쳐지는 여덟 가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먼저, ‘얼음 장수의 왕림’에서는 얼음에 대해서 느끼고 배우며 이를 통해서 삶의 변화를 일으킨 부분을 살펴보게 됩니다. 우리의 필요를 자극하고 상품성 있게 만들어간 냉기와 얼음, 그리고 냉장고의 시초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냉각 기술의 발명’을 만나게 됩니다. 필요(혹은 수요)를 쫓지 못하는 공급량과 단점에 의해서 대안을 찾게 된 인류에게 냉각 기술의 발명 새로움을 주었으나 “실질적으로 냉장고라고 할 만한 물건은 얼음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과학과 기술 분야의 모든 퍼즐 조각이 하나로 합쳐진 19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등장하게 되었다”(52쪽)고 합니다.
‘집으로 들어온 냉장고’에서는 본격적으로 가정용 냉장고의 이야기를 합니다. 전기가 들어간 아이스박스로 사용되었습니다만 “소비자들에게 냉장고가 단순히 욕망을 투영한 사치품이 아니라 실생활에 유용한 주방 가전임을 납득시키는 데는 오랜 설득이 필요했”(83쪽)으며 “기업들은 그렇게 차츰 스타일을 팔고 색깔을 팔고 상품이 지닌 매력과 이름, 이미지를 팔았다”(109쪽)는 것, 마케팅으로 여심을 자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가정을 점령한 냉장고를 다루는 ‘꿈의 주방’에서는 미국의 상황과 더불어 영국을 살펴봅니다. 집의 구조에 따라 냉장고를 들여놓기가 어려웠던 영국은 보급률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이 책의 원저가 영국입니다). 그러나 세계대전 기간에 전후를 대비하는 이들에 의해서 획기적인 변화를 겪게 됩니다. “냉장고의 진입으로 인해 주택의 내부 구조가 변하고 공간의 활용 방식까지 180도 바뀌었다”(125쪽) 이를 위해서 대중 매체의 노출 빈도가 많아지며 마케팅 전략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냉장고는 그 효용성을 인정받고 적절한 공간을 차지하며 가정에 정착한 뒤로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176쪽)고 합니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냉장고의 구조’를 다룹니다. 이를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지난 100여 년간 새로운 기능을 더하고 기존 구성 요소들을 수정하며 서서히 발전해온 냉장고의 구조는 시기에 따른 제품의 형태·기능상 변화와 시대적 관심사를 잘 보여”(181쪽)주기 때문입니다. 초창기에는 소비자의 욕구보단 기술 개발에 힘써 왔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 차츰 발전해 나간 것이지요.
‘음식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내용답게 냉장고를 통해서 새롭게 등장된 음식과 조금은 뒤쪽으로 밀려난 친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과감한 표현을 통해서 현대 가정에서 필요한 주방용 전자기기들의 조화로움을 보여주며, 냉장고에 얽히고설킨 사람의 심리와 습관,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발명된 차가운 요리들까지 사치품으로 보이던 물건을 필수품으로 바꿔놓은 일입니다. 더하여 냉장고 안에 보관된 식품으로 재현된 음식과 그 재료들은 정말 신선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던져줍니다.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며 ‘당신의 냉장고는 건강을 가져다줍니까?’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소개합니다. 인류의 발전사에서 기술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식품과 관련된 위생과 청결의 중요한 발견과 기준도 도입됩니다. 덩달아 냉장고의 새하얀 빛깔을 강조하는 마케팅도 소개됩니다(앞선 장에서 계속 소개 되었던 내용이지만, 저온 유통 체계의 발전은 냉장고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선도를 지켜주기에 건강을 가져다준다는 외침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관리와 사용 그리고 제조상의 실수들은 우리를 위협에 빠지게도 합니다. 그래서 다음의 문장은 마지막 장을 열도록 도와줍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듯이 앞으로도 냉장고라는 기기는 수많은 건강상의 이점과 새로운 가능성, 위험 요소들을 내포한 채 사용자들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줄 것이다”(275쪽)
마지막 장인 ‘냉장고가 꿈꾸는 쿨한 세상’에서는 무엇으로 마무리 될까요. “처음 시작은 다소 불안정했지만 냉장고는 오랜 시간 수많은 기술 혁신을 거치며 차츰 인간 사회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279쪽)고 이야기합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고 있는 냉장고는 우리의 삶 속에서 기술을 그리고 필요를 엮어나갑니다. 새로운 미래도 꿈꾸게 합니다. 결국에는 제목처럼 쿨한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낙관을 가져야겠지요. 왜냐하면 냉장고가 없는 미래는 기분이 나쁘거든요.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내용들을 생각해 봅니다. 냉장고를 통해서 알아보는 인류의 필요와 이를 적절히 대응하여 돈을 버는 마케터와 기술자, 경영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필요악이 아니라 마치 필요충분조건처럼 느껴지는 냉장고를 통해서 우리 삶의 자화상을 만나 보는 것은 어떨까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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