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려본 세월 이만열 외 지음 (서울: 포이에마, 2015)
지난 5월, 4월의 슬픔을 헤아려 볼 수 있다면 어떠한 마음이 될지 고민하며 구매하게 된 책이 본서이다. 흘러갈 만큼 흘러간 세월에 의해서 세월의 아픔이 지워질까 싶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의외로 잘 잊힌다. 그저 멀리 존재하는 사람의 희생이 아닌 주변 사람의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욱 단원구에 택배를 자주 보냈던 사람으로 느껴지는 무딘 감각이랄까. 잊지 않기 위해서 헤아려 보기 위해서 집어 들게 된 본서이다.
11명의 각자의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세월호는 어떤 느낌일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였고, 그 때 느꼈던 감정들과 과정들이 지금에서 바라볼 때엔 더욱 세밀해진 느낌이랄까. 인양할 계획조차 잡히지 못했던 그 때의 모습과 책임의 부재가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추슬러진 것이기 때문이리라.
특별히, 사건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문제들의 겹겹이 걸친 과정과 결과로 존재하기에 더욱 아픔으로 다가온 것은 아닐까.
죽음이라는 '사건'보다 죽음의 '과정' 때문에 이 사건은 특별하다. 33p.
가만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만 했던 그 영혼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쪽이 저려온다. CS 루이스의 다음과 같은 문장은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게 된다.
슬픔이 마치 두려움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19p 헤아려본 슬픔 中
지금도 매일 같은 상황을 돌려보고 있을 유가족의 슬픔이 직접적으로 와 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공감하려고 노력해봐야 하지 않을까싶다. 매년 0416을 애도하고 있는 필자이지만 아직도 부족해 보이는 것은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는지.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은 미지의 미래가, 닫혀있지 않은 미래가 존재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슬픔을 헤아려 보는 것은 다가올 기쁨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세월호 가족의 기쁨은 잊히지 않는 것이리라. 이를 위해 교회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진정한 교회의 사명은 현장에서 드러난다. 146p.
4월 16일을 지킬 수는 없어도, 그 즈음이 되면 기억할 수 있는 추모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경기도의 안산에서라도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기억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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