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영광 강준민 지음 (서울: 두란노, 2019)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축복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를 의지함에 있어서 없어질 존재가 아닌 영원불변하신 분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이 하나님을 믿게 되며, 믿음을 키워나가기 위해 앎을 더하게 된다. 이 앎을 삶으로 나타나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기도와 결심, 행동이 필요할까.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저 시간의 흐름만으로는 불가능한 그 무엇이기에 날마다 정진해야 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날마다 그 분 앞에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존재가 우리가 아닐까. 가끔 뒷걸음도 치고 옆으로 가다가도 돌아오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말이다. 그분을 닮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성경을 한 장, 한 절이라도 읽어보려는 신앙인이기에, 이 세상에서 천국을 향하여 나아간다.
무엇보다 성경을 읽으면서 갖게 되는 의문점들을 소그룹 지도자나 담당 교역자에게 물어보게 된다. 이렇게 하는 도중에 하나님은 누구시며, 무엇을 행하시는가와 같은 질문에 이르게 된다. 이 부분을 신론(혹은 하나님론)이라고 한다. 이를 아주 쉽고도 편안하게 제시하는 것이 이번에 읽어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영광』이다. 총 21편의 글로 엮여져 있으며, 하나님을 더욱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쓰인 만큼, 더욱 자세히 알아가기를, 풍성한 은혜 안에 거하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막상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분이 행하신 일이나 그분의 성품을 설명하기를 어려워한다. 대체, 거룩이 무엇이며 은혜란 무엇이고, 공의란 무엇인지 기억이 안 난다. 전도 집회나 교리문답과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보통 우리는 인물이나 주제, 강해설교를 듣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 자체보다는 그가 행하신 일 혹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조하기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신앙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음식만이 아닌 단단한 음식도 먹어야 한다. 그렇기에 본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선택이 아닙니다. 60p.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위와 같은 저자의 말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분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하나님을 아는 것의 수준이 우리 기준이므로 그분께서 보시기에는 유아의 수준일 수 있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시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분을 어찌 다 알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약하리만큼 적은 우리의 앎을 더하고 연구하여 나온 결과들이 지금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내려주신 성경과 더불어 살아있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다음 문장에도 동의하게 된다.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444p.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그렇기에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길이 되시는 예수를 붙잡게 된다. 십자가의 보혈로 만들어주신 우리를 위한 그 크신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다 알겠냐고 하지만, 그래도 나아간다. 그 앞으로 말이다.
본서 첫 장의 제목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고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랐던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은 될 수 없어도, 그를 따라서 날마다 한걸음씩 나아간다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까. 그렇기에 본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영광을 접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기독 서적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탕집탕을 읽고 (0) | 2019.09.03 |
---|---|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어를 읽고 (0) | 2019.07.25 |
천로역정을 읽고 (0) | 2019.07.06 |
고난을 읽고 (0) | 2019.06.08 |
오늘이라는 예배를 읽고 (0) | 2019.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