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 박찬국 지음 (서울 : 세창출판사, 2012)
대학(大學)이란 무엇인가. 큰 배움을 얻기 위하여 가는 곳이 아닐까. 물론, University의 경우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어원이지만 말이다. 여하튼 대학을 다니는 교양 있는 학생이라면, 한번쯤은 철학 서적 내지 인문학 서적을 읽어보려고 한다. 그러다가 좌절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에리히 프롬의 명저, 『소유냐 존재냐』 일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금 읽게 되고 또 실패하는 책들이 아닐까한다. 물론, 『순수이성비판』과 같은 더욱 어려운 책들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좀 전에 말하였던 서적을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해설서를 읽고 난 후 알려주고 싶기에 쓰는 글이다. (물론, 필자의 경우 넓은 의미에서의 인문학도이기에 과제로 접하게 된 프롬의 책이었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본서의 목차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머리말이 나오며 그 다음엔 에필로그 격인 1장 ‘들어가면서’가 있고 2장에는 에리히 프롬에 대한 생애를 간략히 소개한다. 다음 3장에서는 전체적으로 『소유냐 존재냐』를 해설한다.
본서에서 다루는 프롬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유양식의 삶과 존재양식의 삶의 차이를 다룬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졌던 일련의 모습(예를 들면 1960년대의 학생운동)을 다루기도 하며, 인류사에서 공통적인 종교 혹은 서양사에서의 중요한 그리스도교를 다룬다. 물론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닌 사람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욕구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기에 마치, 사회학적 분석을 사용한 에밀 뒤르켐의 저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프롬은 신프로이트학파로서, 정신분석학의 방법론을 도입하여 글을 쓴 사람이기에 조금은 까다로울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말끔하게 긁어주는 저자의 해설은 참으로 시원하게 느껴졌다.
현대인들의 분주함이란 어떤 무엇에 의해서 쫓김을 당하는 상태이며 이런 의미에서 능동적인 것이 아니라 극히 수동적인 것이며 인간의 노예상태를 강화하는 것이다. 88p.
왜 사느냐가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자의 위와 같은 말처럼, 분주함에 쫓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싶다. 느림의 철학, 천천히 가더라도 다시금 돌아보며 성찰하는 순간이 필요함을 느껴본다.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닌, 딱 있어야 할 만큼만 가지고 사는 simple life라고 할까. 그렇기에 본서를 한번쯤 읽어보길 바라는 바이다. 물론, 본서의 베이스인 『소유냐 존재냐』가 먼저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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