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교회를 향한 10가지 기소장
폴 워셔 지음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8)
신앙에 있어서 올바르다는 것은 무엇일까. 흔히, 나는 우익이라고 한다거나 진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보아야 할까. 신앙인이라면 적어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던 말씀(신5:32; 28:14, 수1:7; 23:6 참조)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임무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 교회의 일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이렇게 쓰고 있느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 소개하려는 서적은 단지 독파를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정독을 하면 성찰(insight)을 할 수 있게 도움이 될 책임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이라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그러나 본서에서 가르쳐주고 있는 내용은 심플하다. 하지만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 왜 그런지는 책을 펼쳐보도록 하자. 먼저, 본서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한국어판 서문을 시작으로 하여 영상에도 나오는 저자의 기도 내용과 들어가며 라는 부분이 나온다. 그 다음으로 총 10가지 주제의 내용들이 펼쳐진다.
1 성경의 충분성에 대한 실질적 거부
2 하나님에 대한 무지
3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지 않음
4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무지
5 비성경적인 복음 초청
6 교회의 본질에 대한 무지
7 교회의 권징 부족
8 구별됨에 대한 침묵
9 가정에 대한 성경적 원칙을 어김
10 하나님 말씀을 먹지 않는 목사들
다소 도발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으나, 그 내용을 읽어본다면 나는 누구인지,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신학 분과 중에서 조직신학이라는 과목이 있다. 조직신학의 정의를 말한다면, 신학을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직신학의 분과 중에서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하나님이다. 계시와 더불어 그분의 속성을 배우는 것인데, 본서의 구조가 흡사 조직신학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렇기에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많은 목사들이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신학을 뒤에 두고 나옵니다. 그들은 대화를 할 때나 사무실에 있을 때는 신학적이지만 거기서 나오면 세속적인 수단으로 교회를 운영합니다. 95p.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이며, 신학의 꽃이라고 불리는 조직신학에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가 어떠한 것을 믿고 있는지,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다룬다. 또한, 인간에 관하여 다루며 성령님에 대한 공부를 진행하게 된다. 여기서 본서로 돌아가 보자. 1장은 성경의 권위를 2장은 하나님은 누구이신지를 3장은 인간의 죄를 4장은 예수님은 누구이신지를 다룬다. 5장에서는 흔히, 말하는 복음에의 초청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다루고 있으며 6장에서는 교회란 무엇인지를 7장에서는 교회의 치리와 관련된 문제를 8장은 거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9장과 10장은 어떻게 보면 목회자 가정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현대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회심하였고, 회심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날마다 죽노라 고백하였던 바울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다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였을 것이다(마6:33). 하지만 필자의 말처럼, 우리는 현대 사회의 도전을 받고 있다. 철학과 사상과 문화에 대한 도전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교회를 개혁하기 원한다면, 먼저 무릎에서 피가 나도록 기도하십시오! 16p.
기도 이외에는 할 수 없다고 하신(막9:29 참조)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더 9장과 10장에서 많은 도전을 받은 것 같다. 먼저, 가정을 더욱 더 주님께 드릴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누군가 다른 이에게 맡기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먼저 지켜야 함을 상기하게끔 도와주는 부분이었다.
힘이 있을 때 복음을 전하십시오! 131p.
다음으로는 위의 문장처럼, 진정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다시금 노력할 것이다. 오로지 나중에 돈이 많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에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가능하도록 말이다. 주께 나아갈 길을 여쭈어 보도록 말이다.
글을 마칠 즈음이 된 것 같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늘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욥의 고백처럼,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그 갈 길을 알지 못하여도 가라고 명령하신 주의 말씀에 순종했던 아브람(바뀌기 전의 아브라함)처럼 순종해야 할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 믿는 자들의 모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고 내 삶을 인도하시는 주(Lord)임을 고백한 자이며, 이 고백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주께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옛날 고백자라는 별명을 갖게 되면 순교를 각오해야 했던 그 시절만큼의 절반이라도 닮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고민을 가져보고 싶다면,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지 점검하여 보고 싶다면 읽어 보길 권하여 드린다. 마치, 성 어거스틴이 로마서를 펼쳐보게 되었던 그 순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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