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없다 개정판 오강남 지음(서울: 현암사, 2017)
저자인 오강남 교수는 원로 비교종교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책 중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고 보인 본서를 다시금 읽게 되었다. 재독할 때에는 원판이 아닌 개정판이 되었다. 이 개정판의 특징은 여러모로 달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존에 저자의 지은 책과 번역 책을 여러 권 읽어본 경력(?)이 있기에 좀 더 쉽지 않았나 보인다. 저는 이번에 읽은 『예수는 없다』1판과 개정판 외에 『세계 종교 둘러보기』1판과 개정판, 『예수가 외면한 그 한가지 질문』, 『기도』를 읽어본 적이 있으며 추후에는 『또 다른 예수』 도마복음 풀이를 읽어볼 계획을 잡고 있다.
책은 5개의 커다란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존1판과 다르게 페이지가 많이 늘어났다. 기존 내용에 대한 가감도 상당부분이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예를 들어 존 쉘비 스퐁의 견해와 마커스 보그의 견해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며, 그 내용들을 상당히 소개하며, 초판에는 있었던 두레공동체의 김진홍 목사 관련의 삭제, 부록에서 첫 번째 내용의 교체 등) 끝으로 부록이 딸려있는 풍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장별 제목을 열거하자면 아래와 같다.
Ⅰ.“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Ⅱ. 성경대로 믿는다?
Ⅲ. 잘못된 신관은 무신론만 못하다
Ⅳ. 예수는 없다
Ⅴ. '지금 · 여기'에서의 mission
본서의 특징은 연재되었던 신문이라는 지면상의 특성으로 인하여서인지는 몰라도,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글로 쓰인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의도적인 것으로 느껴질 만큼,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래서 읽는 이에게 더욱 쉽게 다가오기도 하며, 다소 보수적인 신앙인이라면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그 옛날 예수께서 바리새인에게 가했던 일침을 듣는 느낌이랄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바로 알아듣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은 고쳐가며, 반박할 부분은 반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바이다. 본서의 초판이 나왔던 시기는 2001년이니, 벌써 어언 20년을 향해가고 있는 현대적인 고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다시금 가다듬고 일깨움을 도와주기 위해서,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길벗들에게 같이 걷기를 권함에 도움이 되도록 개정판이 발행된 것이 아닐까한다. 필자 또한 모든 내용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근본주의적, 혹은 교조주의적인 이유에 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시금 상고하여보고 돌아봤을 때에 느끼게 된 점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말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은 동의하는 바이다.
신학이란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시대에 따라 계속 의미 있는 것으로 재해석하려는 '인간의' 작업이다. 337p.
신학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학문이 아닌,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있는 학문이기에 언제나 상황적이다. 그 상황이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할 수 있기에 변화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아닐까. 성경은 어느 신학자가 말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과 같다. 프로테스탄트라면,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 이외의 것을 우상화하면 안 되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성경을 신격화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다시금 이 책을 집어 들고 읽었다. 다원주의 사회 안에서 살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가. 그 안에 혼합되어 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버티고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필요한 부분만 흡수하고 나머지는 놔둘 것인가. 신앙하는 ‘나’라는 존재는 ‘너’라는 존재가 있을 때에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내가 존재함을 알 수 있는 방법은 타자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을 때이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만이 아닌 타종교가 있기에 기독교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통찰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길 원한다면 한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다만, 스스로에게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후에 하길 바란다. 나는 아직 어린 아이와 같아서 젖을 뗄 수 없다면, 아직은 이른 시기라고 생각한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시기에 찾아오길 바라며
성경은 문자적으로 모두 정확해야 믿을 수 있도록 된 책이 아니다. 성경이 주려는 더 깊은 뜻은 문자를 넘어서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은 문자를 넘어서 들려오는 소리에 하나님의 뜻이 서려 있다는 의미다. 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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