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원대학교 좋은강의 에세이 - 2등에 입상한 작품으로 저작권은 목원대에 있습니다.
벌써 교생실습을 마쳤다는 것이 신기하다. 정말로 찰나의 시간이었는데 어느새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분명히, 그 사이에는 많은 학기가 흘러갔을 테고 많은 수업이 지나 갔을 것이다. 내 기억에 남을, 남아있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뽑자면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도중에 떠오른 분이 계셨다. 바로 자신의 삶으로 철학을 가르치신 분을 만났던 것이었다. 그분의 수업 방식을 생각해보면 그 옛날 그리스에서 볼 수 있던 아고라에서의 소크라테스를 만나는 것 같다. 무엇인가를 계속 물어보며 사유케 만드는 대화법, 과거에서의 좋은 점이 돌아온 것처럼만 느껴졌다.
흔히, 철학은 어렵고 지루하며 누구나 배울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삶에 있어서의 철학을 실천하도록 도와준 분이 김승철 교수님이었다. 지나가듯이 언제나 이야기하시던 교수님은 어려운 이론을 우리가 알아듣기 쉬운 일상의 모습에서 발견하도록 하셨다. 어느 날이었는지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날의 주제만큼은 떠오른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그저 신학과라는 이해에서 오는 것처럼, 성서에 나오는 고린도전서 13장을 노래해야 할까, 아니면 노래 가사처럼 말해야 할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자주 되새겼다. 생각하는 존재가 나라고 할 때에 사랑이란 무엇인지 돌아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실재하는 어떤 존재 하나를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다.
위에서 말한 것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철학을 통하여서 배우게 된 것은 바로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생각할 때에 사랑을 이룰 수 있고, 이 사랑이 커져갈 때에 진정으로 생태계까지 돌아볼 수 있으며, 위로는 하나님이라는 신 존재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학우들에게는 철학적인 강의 방식이 다소 익숙하지 않을 것 같다. 대학에서의 수업방식이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오로지 일방적인 전달에만 의존하던 교육을 받은 세대에게는 더욱 멀게만 느껴질 것 같다. 그러나 교육은 쌍방향간에 의사소통이라고 배웠으며, 그렇게 할 때에 보다 더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에 진심어린 교육이 전달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강의 시간이었을까. 철학적 주제에 대한 발제가 있었다. 그 후에 우리 강의실은 약 1시간 동안 뜨거운 토론의 장으로 변하였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교수님은 매우 흡족한 미소를 띠셨다. 이렇게 서로 토론을 벌이게 되면 자기주장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갖기 위해서라도 다음 시간까지 자유로운 공부, 즉 예습을 할 수 밖에 없을 테니 그러셨던 것일까. 물론 이것은 학생 중에서도 나만의 생각일지 모른다. 그러나 강의(수업)에 대한 참여도가 늘어날수록 그 강의는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자습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돌아볼 때에 기억에 남는 강의는 단연코 철학이라는 다소 따분해 보이는 강의일 것이다.
김 교수님의 강의를 본의 아니게 이번학기까지 포함하여 4번째 듣게 되었다. 그 동안의 수업들을 돌아보면 철학이기에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좀 더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면, 나의 삶에 많은 발전을 가져다 준 것이 분명하다.
첫째로, 기다림의 미학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내가 철학을 이끌어나가기 전에 철학이 먼저 나를 이끌어가도록 기다리게 되었다. 내 생각이 아닌 선견자의 의견을 뒤따를 수 있는 인내와 지혜로운 행동이 생기게 된 것이다. 철학자의 도움으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얻게 되었기에, 오성을 사용하는 용기를 얻게 된 것이다. 삶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난센스를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생기게 된 것이다.
둘째로, 정치 현실을 보게 만들어줬다. 철학은 삶에서 나타나야 함을 강의를 통해서 얻었다. 즉, 현실에서의 철학은 정치로 나타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마이클 센델처럼, 정치 철학자는 아니지만 세상의 부정의를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고민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철학 때문이었다. 중세시대의 잘못된 또는 오용된 신앙에 대항했던 철학자들처럼, 학문을 하면서 세상의 부조리에 맞섰던 80년대 학번의 대학생들처럼, 철학은 나에게 현실을 보게끔 만들어줬다.
셋째로, 아는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해줬다. 4년 동안의 학문의 정진 기간 동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철학을 통하여 이를 확실히 알게 해줬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그 자신이 직접 관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낸 것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또한, 어떠한 것이 정설이며 이것만이 진리라고 외칠 때에 이것을 고민하며 분석한 뒤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많은 공부를 했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런 철학자들을 볼 때에 나의 지식은, 나의 앎은 정말 먼지 하나와 같다고 느끼게 되었다. 즉, 아는 것이 없음을 직접 느끼게 해준 것이다.
다시금 휴머니즘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흔히, 신학을 공부하면 휴머니즘이 나쁜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를 통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신학을 사람도 중요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철학으로 느끼게 되었다. 사람을 생각하고 신을 생각해야 하는 학문이 신학임을 알게 해준 것이다. 철학은 질문을 하며, 신학은 대답을 한다고 한다. 이것을 지금의 나는 세상이 묻고 교회가 대답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 김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서 느끼게 된 것은 세상이 묻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이끌어나가는 미래의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더욱 더 철학의 질문을 공부해야 하겠다고 느꼈다.
이러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공부하게 해주는 과목이 철학이며, 이러한 철학을 입문하는데 있어서 쉽게, 그리고 우리의 삶에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시는 분이 김 교수님이셨다. 과거에 쓰인 혹은 서울에 있는 몇 철학과의 교수들께서 쓰시는 어려운 문체의 철학 서적은 철학 입문에 있어서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러한 틀을 깨며, 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이 김 교수님이셨다. 이 사실을 학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참 아쉽다. 후배들이 보다 더 철학을 어려워하고 힘들어하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해야함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실용적인 것만을 찾다가는 기초 실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기초 학문 공부에 정진하지 않으면 2차적인 학문 공부는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수학이 논리학의 기초가 되는 것처럼, 철학은 질문을 던져주기에 신학은 답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기초가 든든하면 넘어지지 않는다. 고목은 뿌리가 든든하기에 고목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이다. 나 또한 철학을 뿌리로 삼아서 신학이라는 나무가 되어 신앙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그런 신앙인, 신학자가 되면 좋겠다. 그 길이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바로 철학을 가르쳐주신 김승철 교수님 덕택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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