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양면성
복음은 동전과 같다. 어느 한쪽만을 강조할 수 없는 것이 복음이다. 개인의 변화를 강조하며, 공동체의 변화를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다 볼 때에 우리는 어떠한가? 현재의 기독교는 개인의 변화를 강조하는 것도 아니며, 사회의 변화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복음은 분명히 개개인을 변화시켰으며, 사회에 여파를 미쳤다.
교회사를 돌아볼 때에도, 복음은 영향력이 컸다. 사도 시대에 몇 천 명씩 회개를 이루던 개개인의 변화가 있었으며 가까이에는 사회의 변화를 주장하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사람도 존재했다. 물론, 이시기에도 사회보다는 개인의 변화만을 강조하여서, 교회의 역사책임을 등한시하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교회사를 들여다보면, 5·6공 시절에 침묵하였던 모습을 발견한다. 아니, 그들과 화목하였던(?) 모습을 보기도 한다. 빛과 소금이 되어야할 존재가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해야할 에클레시아가 같이 하였다니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물론, 위의 권세에 순종하라는 말씀이 있다. 더불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는 말씀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말씀을 떠올려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선지자와 율법의 강령을 볼 때에 이웃의 아픔을 등한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가르치신 사랑의 실천을 거부하는 것이다. 즉, 복음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에반젤리즘과 에큐메니즘은 동반자이다. 복음이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고서 어떠한 형태로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면 이것이 전도일 것이다. 바로 이때에 진정한 의미의 관계전도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복음을 단순하게 전하는 사영리식 전도로도 표현이 된다. 요즘, 한국교회는 특히 전도가 안 된다고 투덜대는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다. 바로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흘러넘친다면,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이 보인다면, 비기독교인들이 보았을 때에 “그리스도인이라면 저래야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좀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저 예수쟁이들”이라는 말이 나와야 한다.
우리의 잘못된 언행으로 복음을 가려서는 안 된다. 사람의 편파적인 행위에 의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진 복음은 마치, 소금이 제 맛을 잃어버려서 밖에 버려진 것이다. 항상 기도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과 이 세계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제자로서의 삶, 참 어렵지만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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