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서적 리뷰

신과 악마 사이

읽고쓰고나누고 2024. 9. 1. 21:47

신과 악마 사이 헬무트 틸리케 지음 손성현 옮김 (서울: 복 있는 사람, 2022)

 
“너와 나의 나이 차이, 소주와 우유 사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노래가 있다.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인가는 언제나 다름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번에 읽어본 책의 제목도 사이를 강조하고 있다. <신과 악마 사이>
 
원제를 번역한다고 해도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그렇다고 독일어를 제가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신과 악마 사이>. 표지의 디자인도 색다르게 다가왔다. ISBN과 함께 하는 바코드를 따로 배치하지 않고, 왠지 모르게 성전 꼭대기를 형상화한 것 같은 그림이 바코드 그 자체였다(어쩌면 악마의 표시를 바코드라고 말하던 그분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위에는 뛰어내려 보라고 말하는 존재의 악마와 옆에 서 있는 예수가 계시고. 띠지를 활용해서 더욱 비비드함으로 말을 걸어온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것일지 아니면 세상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음을 그린 것일지.
 
책은 사십일의 금식을 마친 예수께 나타나 세 가지의 유혹을 제시하는 악마의 모습을 사십 개의 글들로 나누어 제시한다. 사순절 기간에 묵상할 수 있도록 마련된 안성맞춤의 작품처럼. 그만큼 천천히 읽을수록, 곱씹어 볼수록 생각할 것이 담겨 있는 책이라고 할까. 분명히, 헬무트 틸리케의 또 다른 명저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와는 맛이 다른 글이었다. 역자의 다름도 문장의 맛을 다르게 하겠지만, 목적이 다른 글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시대성을 담았지만, 복음서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노력하던, 매우 젊은 시절의 틸리케.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 중에서 나는 왠지 성악설을 따르고 싶은 사람이지만, 저자의 글을 읽어가면, 신과 악마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으나 그 행동의 깊은 내면의 동기는 악마적 결단이거나 신적인 개입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곧 세상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다. 우리는 의로우며 동시에 죄인이다. 93쪽

 
사람의 바깥에서 들어온 게 더러운 것을 내뱉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고 역한 것을 뿜어낸다. 밖에서는 좋은 생각을 우리에게 주려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는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싶어 한다. 뒷담화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들이 이를 증거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언제나 시험을 당하고 언제나 쉽게 상처를 입는 존재다. 56쪽

 
다른 이의 말에 쉽게 상처받고 아파하고, 시험에 드는 존재가 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 사람은 쉽게 흔들린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예수께서 유혹을 이겨내셨고, 승리하셨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은 독서 모임 덕분에 읽게 되었다. 역자께서 함께하시어 좋은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곱씹어 볼수록 좋은 문장이 담겨 있다. 모든 것을 악마화해서 바라볼 이유는 없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살아가면서 체득하기에 신앙이 필요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악마를 묘사한 픽션이었다면, <신과 악마 사이>는 성서의 구절 행간을 살펴보는 논픽션과 픽션의 사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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