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종교학

거룩함

읽고쓰고나누고 2022. 12. 1. 22:27

거룩함 존 웹스터 지음 (고양: 터치북스, 2022)

 

거룩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나의 삶이 존재하고, 그 가운데에서 마주하게 되는 그분의 존귀하심과 사랑은 어떤 상관관계에 놓일 수 있을까. 책 제목을 보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레위기의 말씀이 떠오른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거룩하니 신학도 거룩하라”는 겉표지의 문구는 거룩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거룩과 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혹은 예배를 드리면서 ‘거룩’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많이 듣고 배우긴 한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면 이건 누구의 잘못일지 혹은 이 모습이 정상인 것일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은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완성이 아닐까.

 

저자는 ‘거룩함’이라는 주제를 놓고서 삼위일체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이 거룩함이 성도의 교제라는 모습을 통해서 볼 수 있는지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기도 하다(물론, 성도의 교제하면 디트리히 본회퍼부터 떠오르는 분들도 상당수 계시겠지만 말이다). 책은 총 4장에 걸쳐서 신학과 하나님과 교회,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에 대해서 논한다. 각 장을 하나씩 천천히 음미하듯 읽으며 재독 혹은 삼독을 하면서 생각에 잠겨볼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존 웹스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 독자들을 위해서 그의 삶과 신학을 간략하게,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를 정말로 잘 설명해주는 친절한 해제가 책의 부록으로 담겨 있으니 필요에 따라서 먼저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에 몇 부분을 옮겨본다.

 

신학은 인간 역사 안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일이다. 39쪽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이 아닌 아래에서부터 위로 찾아가는 노력이라 할 수 있는 신학임을 생각토록 만들었던 문장이었다. 내가 바라본 방향에서만 볼 수 있는 하나님, 그래서 타인이 바라본 방향과 방식을 폄훼하는 일련의 모습들을 돌아보게 하는 순간.

 

하나님은 그저 교회의 최초 원인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교회의 목적에 불과한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교회가 있다. 125쪽

 

초월성이나 내재성이라는 용어로 혹은 최초 원인이나 목적이라고 표현하기보다 “계시기 때문에”라는 문장이 더 정감 있고 반가운 것은 일상의 신학, 일상의 신앙이기에 그런 것일까. 하나님은 저 멀리에 계시지도 그렇다고 우리를 내팽개쳐 버린 분이 아닌 함께 하시는 분임을 믿기에 그런 것이라 믿는다.

 

모쪼록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은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신학을 담아내고 있다. 복잡다단한 최첨단의 이론을 꼬아서 쓰지 않고, 필요한 만큼을 적당히 요리해서 내놓는다. 그리곤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거룩하니 신학도 거룩하라”는 외침을 만난다.

 

과연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를 바라볼 수 있을까. 삶의 일부분이라도 그분을 닮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터치북스 시리즈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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