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서적 리뷰

후각과 환상

읽고쓰고나누고 2021. 9. 3. 00:56

후각과 환상 한태희 지음 (서울: 중앙books, 2021)

 

  향기를 잘 맡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의 구분을 명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흐름을 파악해내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나름대로의 정리를 갖고 있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둘째 아이와 나는 냄새를 열심히 맡는다. 나야 뭐 자취생활을 해왔던 기억이 있기에, 남자냄새 날까봐 노오력 했던 것이 DNA로 물려준 것이 아닐까라는 미안함과 함께 산다. 제아무리 뛰어나다 하여도 프로후각러인 멍돌이들을 따라가랴.

 

 

  그러다가 새 책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러나 강렬한 핫핑크의 뒷면과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 보이는 겉표지를 보게 된다. 저자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표현해낸 디자이너의 작품일 것이다. 텍스트로 나타낼 수 없는 감각에 대한 도우미와 같다고 해야 할까.

 

  3부로 구성되어 중동과 아프리카를 건너 유럽으로 그리고 아시아를 따라 움직이는 여정을 써 내려간다. 아니, 향기의 자취를 찾아간다. 뇌리 속에 강렬하게 남겨진 그 흔적을 찾아서 생생히 기록한 것처럼 여겨지는 글들을 만나게 된다.

 

  에필로그에서 만나게 되겠지만 그 기록은 바로 어제의 일들이 아닌 것들도 포함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남게 되는 것은 종종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오감에 의해서 남겨진 영상과 같은 기억이다. 이성(혹은 지성)을 의지해야만 오랜 시간동안 잊히지 않을 기억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우리의 뇌는 아직까지도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 뇌세포가 혹은 신경이 향의 끝자락을 담고 있는 것일까.

 

  길거리에 느껴지는 혹은 꽃과 나무, 카페와 식당에서 만나게 되는 식음료들을 통해 부드럽고 은은하거나 너무나 비비드한 냄새가 각인된다.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미지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요소로 구성된 것이 더 많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언제나 언어보다 비언어적 요소들이 전하는 대화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후각을 통해서 느끼는 냄새는 과연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차이가 존재할까. 혹시 우리가 임의로 결정내린 일종의 고정관념이 아닐지를 저자는 콕 집어서 말해준다.

 

악취와 향기는 인간이 가른 개념일 뿐, 생태계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인간 또한 그 사슬로부터 무관치 않다. 224쪽

 

  내가 느끼는 바가 전부가 아닌 것처럼 이 냄새가 나에겐 별로지만 어느 이에겐 끌어당기는 요소임을 즉 진리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인문에세이의 냄새가 묻어나는 여행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떠나지 못하는 여행을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글로 그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장과 다양한 사진으로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이 책, 이 작가분과 안정이 취해지면 여행인솔자로 모시고 향기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진다. 호모 퍼퓨머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글 덕분에 말이다.

 

YES24 리뷰어클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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