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 월터 브루그만 지음 (서울: IVP, 2020)
코로나가 지금쯤이면 물러나겠지 혹은 잠잠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지난 봄, 하지만 벌써 가을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곧 풍성한 한가위라는데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답답해져가고 있다. 우리의 일상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충분할 만큼의 모습이 지금이기에 다시 춤을 출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읽었던 이 책의 저자는 그만의 독창적인 문법인 예언자적 상상력을 통하여서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를 기다린다.
7장이라는 유의미한 구분으로 되어 있으며 그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1장 ‘폭풍이 불어올 때’는 전염병 출현에 관해 구약성경 중에서 레위기 출애굽기 욥기를 택하여 나타나는 몇 가지 복합적 해석안을 다룬다. 언약의 집행 방식, 야웨의 의도적 권능 행사, 자유로이 행하시는 야웨의 거룩함을 통해서 살펴본다. 특별히 기억해두면 좋은 내용으로는 루돌프 오토의 『성스러움의 의미』를 인용하면서 그에 따른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생각해보도록 만들어 준다.
2장 ‘하나님의 자비? 누가 알겠는가?’에서는 사무엘하의 내용중 다윗의 인구조사에 관한 것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전염병과 저주라는 소제목 아래에서는 삼중적인 저주를 살펴보며 징계에 대한 세가지 선택지에서는 앞서 살펴본 삼중적인 저주와 동일하게 셋을 강조하며, 한결같은 사랑 안에 뿌리내린 소망의 주제에서는 헤세드의 의미를 그리고 열린 상상으로의 초대에서는 하나님의 자비를 상상하자고 주장한다.
3장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에서는 예레미야가 겪었던, 결혼식과 장례식조차 할 수 없던 상황을 중심으로 다루며 책제목으로까지 차용되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이런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결혼식이라는 즐거움의 행사도 장례식이라는 아픔을 나누는 것조차 치룰 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헤세드(신실하신 사랑)를 바라보면서 다시금 일어설 수 있을 것을 믿으며, 그 날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그 예를 독일의 린카르트로 보여준다. 그가 쓴 찬송시를 소개하며 처했던 상황을 설명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이라고 표현하면 좋겠다.
4장 ‘바이러스 한가운데서 기도하기’에서는 열왕기상의 예루살렘에서 솔로몬의 성전 봉헌기도를 살펴본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기도와 전염병에서는 특별히 솔로몬의 봉헌기도를 다루고, 역대기의 전환에서는 신명기적 생각에서 역대기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보여준다. 기도는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그 의미는 변경된다. 모세에서 다윗에게로 그리고 쌍방 언약에서 일방적 보증으로 달라짐을 보게 된다. 다음으로 이데올로기와 마술적 사고라는 소제목에서는 기도를 통한 기도의 장소를 국가의 왕권 강화를 위한 홍보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그리고 기도에 대한 순진한 개념, 신앙주의를 통하여 해결을 바라는 것으로 마치 트럼프가 그런 것처럼 보였음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소제목인 재앙을 맥락화하는 상호 관계에서는 신실하게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실 것을 기꺼이 신뢰하는 것을 다룬다.
5장 ‘자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킴’에서는 시편 77편을 통하여 진실한 신앙인이 간절히 소망하는 삶의 새로운 방향 설정에 대한 그림을 훌륭하게 구체화하여 보여준다. 자아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하여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질문들과 상처받은 파트너, 그리고 상상력의 새로운 세계로써 우리와 과거로 다시 돌아감과 재맥락화의 결론을 다루는데, 이것은 관심사가 ‘나’에서 ‘당신’(Thou 즉, 하나님을 의미하는)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를 보여준다.
6장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에서는 이사야 43:18-19을 통해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새 일을 행하심을 보라고 말한다.
마지막 7장 탄식의 행렬에서는 이사야 42:14-15을 중심으로 하여 출산의 고통으로 비유되는 변화에 따르는 아픔을 다룬다. 이것은 두 가지의 중분류로 다루어지는데, 각각은 침묵하지 않음과 새 창조의 도래를 말한다. 고된 노동으로 탄식하는 이스라엘과 부르짖는 땅,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라는 각각의 소제목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애굽에서 탄식하던 유대인들과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땅의 울음, 그리고 피조물의 찬양이라도 받으실 분을 만나게 된다. 새창조의 도래에서는 미래 없는 탄식, 탄식 없는 미래, 포기와 단념을 위한 교육, 추방과 십자가를 보게 된다. 아무 소망도 없는 현대의 자화상과 이와는 반대로 고통 없이 열매만 얻으려는 현재의 기독교인들을 꼬집는 내용을 보게 된다. 다음으로 현실에 도취된 아니, 속임 받고 있는 우리가 깨어나도록 해야 함을 말해주며, 마지막에서는 탄식의 순기능을 보여준다.
다른 때보다 더 분석적이게 살펴본 내용들을 다시금 종합하여 생각해본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계셨을 때의 성경은 우리가 지금 구약이라고 부르는 유대인의 성서였다. 그 말씀을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셨고, 우리에게 천국이 왔음을 설파하셨다. 저자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예언자적 상상력을 펼치신 것이다. 과거의 책, 고대의 책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무장하고, 다시금 일어서서 춤을 추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읽게끔 만들어 줄 수 있는 이 책을 읽어보셨으면 한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촉발된 우리 신앙의 현실과 잘못된 적용이 남발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더욱 필요한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밑줄 긋기 부분들]
어떤 목회자들은 예수님이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 교회의 목회자는 그런 사람들을 "멍청이들"이라고 부른다. 옳은 말이다. 심지어 예레미야는 그와 같은 멍청이들조차 아예 볼 수 없었다. 사회적 시스템이 전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75쪽
목회 사역의 역할은 이 바이러스가 최종 권세가 아님을 보여 주는 것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 바이러스의 치명적인 힘마저 꺾을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심지어 전염병으로 인해 가족까지 잃은 상황에서도 기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했던 린카르트 목사의 솔직한 증언이 있다. 82쪽
새로운 창조는 쉽게 오지 않으며, 오직 비통과 희망을 모두 포괄하는 고통스러운 싸움을 통해서 온다.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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