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 관련

창조와 타락을 읽고선 생각하다

읽고쓰고나누고 2019. 4. 8. 20:34

창조와 타락 디트리히 본회퍼 지음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창세기 1-3장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본서는 그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서 출판되어졌던 책이다. 왜 출판하기를 원했었는지를 본서를 톨레 레게하면 알게 되리라. 신학 과목으로 행해졌던 강의가 아닌 설교로 생각이 드는 부분도 다소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본서는 어떤 목차로 되어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마당

둘째 마당

셋째 마당

넷째 마당

 

   총 4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넷째 마당은 에필로그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1-3장에 대한 결과론적인 부분으로써 등장하니 말이다. 각 마당은 행해졌던 강의의 날짜로 나눠진 것이 아닌, 출판을 위하여서 각 장별로 임의적으로 나누어진 것임을 감안하며 읽어야 할 것이다.(물론, 각주를 통하여서 이 부분이 어느 시기쯤에 행해진 것인지를 기록하여 있으니 구분의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문장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창조이야기는 교회에서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어 그리스도를 향해 오로지 나아가는 방식으로 읽혀져야 하며, 37p.

자기의 생동감에 취한 요란한 기쁨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는 신속하게 침묵을 당하게 될 것이다. 92p.

성서는 악의 기원에 대해 무언가를 알려 주려는 것이 아니라, 악의 성격이 곧 죄라는 것과 인간에게 영원한 질곡이 된다는 것을 증거 하려고 했다. 133p.

 

  먼저,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에 특별히, 창세기를 읽어 나갈 때에 오른쪽으로 치우쳐진 읽기(창조과학처럼)를 하거나 좌측으로 치우쳐진(본문비평을 통하여 쪼개어진) 독법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리스도라는 렌즈를 통하여서 볼 때에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방법의 읽기가 될 것임을 동의하는 바이다. 또한, 스스로에게 자아도취적인 신앙이라든지, 혹은 도전적이었던 구 천사장 루시퍼의 모습에서든지 나타나는 모습은 자칫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게 할 수 있음을 알게 해주는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성경에서 마귀론이라든지, 여기서 더 나아가 악마의 서열을 구분해나가는 다소 판타지적인 모습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성서가 알려주는 것은 죄 된 인간의 모습과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이다. 그래서 좋은 문장이라 생각하였다.

 

   자칫 창세기를 읽으면서 놓치기 쉬운 부분들과 더불어, 우리의 오독을 잡아주는 강해와 같았던 강의를 직접 들을 순 없었지만, 지면으로나마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참 행운이라 생각한다. 조금은 떨어진 시대에 살았다가 먼저 떠나간 본회퍼에게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이미지 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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