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외면한 그 한가지 질문 오강남 지음 (서울: 현암사, 2002)
저자인 오강남 교수의 『또 다른 예수』도마복음 풀이를 읽어볼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게 된 서적은 『예수는 없다』와 보완관계를 갖고 있는 책입니다. 본서는 가장 먼저 캐나다 토론토 교민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입니다. 이를 엮어서 『길벗들의 對話』(1983)에 나왔다가, 『길벗들의 대화』(1994), 『열린 종교를 위한 단상』(1996)이라는 개정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 후 절판된 상태에서 『예수는 없다』(2001)의 출간에 맞추어 다시 나온 서적입니다. (본서 5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옮겼습니다.)
모쪼록 본서를 소개하기에 종교학에 대한 선 이해를 갖고 계시면 더욱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토양에 어울리게 나온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국 혹은 캐나다에 이민을 온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 중에서도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된 여러 기독인만을 대상으로 한 글을 아니었기에 이를 염두에 두어 읽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본서는 다음과 같은 구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 진리의 길
2부 - 자유의 길
3부 - 믿음의 길
부록 - 함께 가는 길
대체 진리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하여 종교란 무엇인지를 다루고 성경이 정말로 무오한지와 같은 내용들이(다소 본서에서 다루는 내용들에 대하여 근본주의 내지 일부 신앙인들은 반발을 가질 내용도 적지 않습니다.) 나오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주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본서의 내용을 무조건적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책에서 취해져 있는 논리에 대하여서 수긍할 수 있는 것인지 따져보고, 참고문헌도 살펴보는 등의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커다란 의미의 종교라는 틀 안에서 같이 생각하고 나누고 걸어가는 것, 이것이 책에서 말하는 ‘길벗’의 모습이 아닐까요.
다른 무엇보다 본서에서의 흥미로운 어구 중에 하나는 ‘우물 안 개구리’의 이야기를 차용하여 계속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일평생을 자기만의 시선과 방식으로 살아오던 사람에게 새로운 것, 아니 보다 넓은 차원의 것을 설명해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어떻게 나타내고 가르쳐 줄 수 있을까요? 그저 가서 보라는 것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조차도 나아갈 용기를 가진 사람에게만 가능한 내용이긴 합니다. 이 이야기는 서양의 동굴에 비친 그림자 이야기의 동양 버전과 같습니다.
본서의 논리로 생각해봅니다. 종교란 이런 깨우침을 가진 사람들에(선각자 혹 성인 등) 의해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종교학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닌 논리적인 생각에 의해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요. 좀 더 어려운 표현으로 하자면, 궁극적 실재에 다가감을 노력하는 것, 이것이 종교의 생활, 즉 신앙함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 궁극적 실재에 대해서는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질 때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일부분만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를 비유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온전히 그분에 대하여 알 수 없습니다. 그분에게 나아가는 그 날까지 날마다 조금씩 정진하고 있을 뿐입니다.” 앞과 같은 진술은 기독교적 표현이지요. 저자는 이러한 표현보다 좀 더 나아가 궁극적인 실재, 혹은 진리 그 자체를 말하려고 합니다. 본서의 제목에서 나타나는 질문은 결국 진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물음입니다. 결국 인생 저 너머에 있는 ‘진리’를 찾기 소망하는 자들에게 바쳐지는 책입니다. 각각의 내용에는 분명히 동의할 것도 있고,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어떠한 것인지는 분명하기에 같이 걸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동료이기에 특별히, 현재의 한국 상황 내에서의 개신교는 값싼 은혜로 변질시키지 않는 노력이 필요함을 다루어주셔서 더욱 감사할 따름입니다. 모쪼록 본서에 도움을 받는 분들이기 계시길 바라며 소개를 마치도록 합니다. 감사합니다.
'신학, 종교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계의 가면을 읽고 (0) | 2018.06.29 |
---|---|
설교란 무엇인가를 읽고 (0) | 2018.06.14 |
역사를 통해 본 기독교의 신비주의를 읽고 (0) | 2018.04.07 |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를 읽고 (0) | 2018.02.10 |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을 읽고 (0) | 2018.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