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언어(The Language Of God) 프랜시스 S. 콜린스 지음 (파주: 김영사, 2009)
본서는 3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먼저, 과학과 신앙의 간극을 다루고 있다. 특히, 1부는 저자의 경험을 주로 하여서 세계관의 차이까지를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인간 존재에 관한 심오한 질문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며, 여기에서는 빅뱅과 같은 우주의 기원 DNA해독 문제 등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3부에서는 과학에 대한 믿음, 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주제로 역사적인 주제의 고찰과 더불어 무신론과 불가지론, 창조론, 지적설계론, 바이오로고스와 같은 다소 학문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무거운 문체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부록에서는 보다 더 전문적인 내용의 자료를 소개한다.
본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학과 신앙은 따로 가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신은 자신의 언어에 한계가 없음을 본서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 진화는 우연에 지배되는 듯하지만, 신의 관점으로 보면 그 결과는 하나하나가 전적으로 미리 정해진 것이다. 이처럼 신은 각각의 종이 창조되는 순간에 일일이 완벽하게 개입할 수 있지만, 시간 개념이 일차원적 수준에 머무르는 우리가 보기에는 이 과정이 방향성도 없는 무차별적 과정으로 보이기 쉽다. 207p.
일신교를 믿는 신자라면, 특히 기독교도라면 진화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반대로 과학을 추종하며, 과학만이 진실이라고 외치는 자들에게는 창조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외침을 볼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양극단에 서있는 자들이 이 모든 것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며, 서로 간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분리를 조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생물학과 의학, 유전자에 조예가 깊은 학자로서 말하고 있으며, 루이스처럼 모더니즘을 적극 신봉하였지만, 기독교로 개종하며 신앙의 삶을 좇는 신앙인으로서 말하고 있다. 필자 또한 진화론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창조론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방금 위에서 인용한 글처럼 우리는 시간에 대한 일차원적인 이해 밖에 없는 존재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존재하고 있는 신에게는 시간이란 여러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리라. 아쉽게도 인간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타임머신의 발명으로 인하여서 극복할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본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신앙은 무엇인가?
하느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젊은 지구 창조론에 끌리는 이유는 과학 발전이 하느님에게 위협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느님에게 구태여 변론이 필요할까? 하느님은 우주 법칙을 창조하지 않았던가? 하느님은 가장 위대한 과학자가 아니던가? 위대한 물리학자는? 위대한 생물학자는? 더 중요하게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하느님의 창조에 관한 엄밀한 과학적 결론까지도 무시해야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하느님을 명예롭게 하는 자들일까, 욕되게 하는 자들일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신앙이 자연에 관한 거짓에 기초할 수 있을까? 178p.
이쯤에서 우리는 경건한 불가지주의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신앙인이라면, 자신의 성경에 나타난 것 이외의 내용에 대해서는 판단 유보할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확실하게 언급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즉, 가인이 나가서 살았던 곳에 다른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억측하여서 설명하려 한다면, 소설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즉, 성경에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성경은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는 백과사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인체 해부학이 나온 것도 아니며, 언어 교육법을 알려주는 교과서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켜야 할 도리나 인생의 허무함과 같은 것들이 나와 있고, 신앙이란 무엇이며 이 삶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하는지를 보여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통하여서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해주며, 올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해주는 것이다.
필자가 여기에서 설교를 해야 할 의무는 없기에 위의 내용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다시금 돌이켜 보자. 신앙과 과학은 양립할 수 없는가? 저자는 신앙과 과학이 융합하여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바이오로고스라는 용어를 만들고 그에 대한 설명을 책의 후반부에서 하고 있다. 즉, 서로 간의 전쟁이 아닌 더불어서 협력하는 삶을 바라는 것이다.
다소 글이 길어진 것 같다. 과학이란 무엇이며, 신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어느 유능한 유전학자의 고민을 듣고 싶다면 본서를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신앙 안에서의 거듭남을 겪어야 할 것이다. 진지한 탐구 자세로 나아갈 때에 신앙이란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고민을 할 때에 비로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신학, 종교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래에서 온 편지를 읽고.. (0) | 2011.09.17 |
---|---|
영화와 영성을 읽고.. (0) | 2011.08.21 |
복음주의 신학의 역사를 읽고.. (0) | 2011.07.14 |
신학으로의 초대를 읽고.. (0) | 2011.07.04 |
한글자로 신학하기를 읽고.. (0) | 2011.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