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종교학

복음주의 신학의 역사를 읽고..

읽고쓰고나누고 2011. 7. 14. 22:38

복음주의 신학의 역사 로저 올슨 지음 (서울; 한들, 2010)

 

  복음주의란 무엇일까 에반젤리즘(Evangelism)과 에큐메니즘(Ecumenism) 이 둘은 서로에게 적대적인가 양립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에큐메니즘 신학 노선에 있는 자는 에반젤리즘 노선의 흐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대한 교과서가 오늘 소개할 책이다. 본서의 번역자와 지도를 한 교수는 동일한 이야기를 한다. 에큐메니즘과 에반젤리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한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바로 기독교의 본질이 아닐까?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서적인 것이다. 본서는 먼저 복음주의의 개념을 다룬 후, 복음주의 신학의 역사적 기원을 다룬다. 그리고서는 후기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신학을 소개하며 결론을 내린다.

 

  1장에서 복음주의의 개념을 다룬다고 했다. 왜 그러한가 하니, 통일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의미가 7가지가 있다고 분류한다. 본서에서는 7가지 중에서 6번째의 의미를 다룬다고 한다. 후기 근본주의적 복음주의 신학을 다루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필자는 칼 헨리를 서적 한권을 읽어봤고 좋아한다. 바로 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이라는 서적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르게 서 있다면, 복음을 통하여서 지적으로도 바르게 신앙을 키워가며 신학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고 보는 것이리라. 본서를 통해서 접하게 된 가장 인상적인 신학자는 블뢰쉬였다. ‘이해하기 때문에 믿는 것도 아니며,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 것도 아니며,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라는 주장을 다시금 고수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것도, 칼 헨리의 방법도 아닌 중도적인 방식이자 가장 종교개혁 전통을 따르는 모습이었다.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우리의 지성(이성)은 분명히 뛰어난 것이지만 성서의 표현을 따르자면, 죄로 인하여서 오염되었으며 교만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인하여 올바르지 못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것이라서 믿는다면, 유태인들이 나치에 의해서 죽게 되었기에 히틀러를 믿는 것과 다름없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주의를 돌려서 이해하기 위해 믿는 것을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삶을 이끄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믿는 것이다. 정말로 빅뱅에 의해서 세계가 나타났으며, 어느 순간의 우연으로 인하여서 생물이 시작되고 원숭이가 사람으로까지 진화되었다는 것이 믿어진다면, 아니 믿기를 강요당한다면 더욱 고민이 될 것이다. 과연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이 세상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과 맞닿을 것이다. 이렇게 실존과 맞닿을 때에 올바른 해답을 제공하는 것이 종교이며, 살아있는 신을 믿는 것이 참 종교일 때에 기독교는 더욱 더 매력적일 것이다. 그렇기에 신학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물론, 각 교단에 따른 신학적 노선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이 하나가 되기엔 힘든 부분도 있다. 하지만 개인과 사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처럼, 에반젤리즘과 에큐메니즘은 따로 갈 수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라도, 우리가 말하는 저 천국에서의 삶 속에서도 혼자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이웃을 돌아봐야할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에 어떠한 이데올로기에 속하여서 본질을 잊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로의 회복을 노력해야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결론을 담지하는 것이 본서의 마지막 장이다.

 

  이러한 생각을 나눌 때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일까? 필자가 아는 어느 교수님의 사견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결국 인간이 하는 모든 신학적인 노력은 본체이신 하나님에 대한 지극히 미약한 연구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인하여서 보다 더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는 더욱 알아가는 중이다. 2천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만큼, 이러저러한 모양도 많았지만 다듬어진 것이 현재의 신학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가야할 길이 멀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이 되어서야만 온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반응형

'신학, 종교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와 영성을 읽고..  (0) 2011.08.21
신의 언어를 읽고  (0) 2011.08.06
신학으로의 초대를 읽고..  (0) 2011.07.04
한글자로 신학하기를 읽고..  (0) 2011.06.25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를 읽고..  (0) 2011.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