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주석 새로 보기 왕대일 지음 (서울: 성서학연구소, 2005)
주석, 참 어렵다. 아니 쉽다? 주석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적다. 이것이 현재 주석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특히, 구약주석일 경우에는 더욱 심하다. 구약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저 신약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은 아닐는지, 혹은 폐기되어야 함을 외치던 마르시온과 같진 않은지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구약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하며, 구약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에 대한 도움을 주는 서적이 오늘 소개할 책이다. 비록 모양새와 내용이 사뭇 신학서적이라서 신학을 하는 사람이 아닌 평신도일 경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지 모르나, 진정한 의미의 신학 함을 따른다면 우리는 모두다 신학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도 읽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읽어보기를 권하는 1장의 경우에는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서의 구성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Ⅰ. 딜레마
Ⅱ. 주석이란 무엇인가
Ⅲ. 새로운 구약주석의 기초
Ⅳ. 구약주석 새로보기
구성은 위처럼 단촐(?)하다. 그러나 오늘 살펴볼 주제는 이 중에서도 1장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다른 부분들 또한 흥미로운 주제로써 재미있게 다루고 있지만 다소 복잡하며 신학적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부분이기에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1장을 소개하려고 한다. 보다 더 자세한 학문적 탐구를 위해서는 다른 장을 탐독하길 권한다.)
‘딜레마’라는 제목처럼 ‘1. 신학과 교회의 별거, 2. 설교 없는 주석, 주석 없는 설교, 3. 위기에 처한 성서해석’이란 소주제를 잡으며 1장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신학과 교회의 별거라는 말처럼, 신학공동체와 교회의 공동체가 별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 저자는 철저한 고발을 하면서 본서의 내용은 시작을 한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하면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내부의 시선으로 자체적인 정화작업을 하기 위한 목소리라 할 수 있다.
본서의 저자는 감리교도이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감리교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에큐메니컬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고백을 하는 교단은 다름 아닌 장로교회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의 정식명칭은 개혁주의 교회임을 조금만 알아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Reformed'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기를 좋아한다. 아니, 고집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진정한 기독교의 모습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자기를 부인하며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을 그리스도께서는 원하셨고, 설파하셨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저자가 말한 “성서가 교회의 신앙의식이나 규범을 해석해야만 한다.”는 크나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런 시점에서 신앙공동체(교회)와 신학공동체(신학교와 더불어 학자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저자는 본서에서 밝히고 있다. 특히 설교와 주석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철저히 말한다.
설교 없는 주석이 공허하다면, 주석 없는 설교는 맹목적임을 알아야 한다. 주석이 설교에 봉사해야 됨에도, 설교가(설교의 준비가) 주석에서 출발해야 됨에도, 주석과 설교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벌어지는 서글픈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27p.
우리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이에, 하나가 되어 있어야 할 공동체가 멀어지고 있음을 저자는 질책한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다 하나로 뭉쳐서 기도하며, 기독교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사유하고 이를 지켜나가던 공동체가 시나브로 하게 바뀌어 버렸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모습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성경을 더욱 열심히 봐야한다. 우리의 삶의 표본이 되는 성경을 우리는 읽어야만 하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특히, 그 모든 잘못을 되풀이하던 구약의 모습에서 우리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배워야 할 것이다.
“성서는 그것을 정경적으로 읽는 신앙 공동체에게 늘 새롭게 읽혀지고, 들려지며, 해석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이와 같은 모습이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가 아니었던가. 언제나 우리에게 쥐어진 성경은 Final text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학문적인 연구로 보다 더 우리에게 온전히 전해진 정경으로 다가가고 있으며, 그에 따른 결과물이 개역개정 4판 성경임을 우리는 안다. (혹여 모를지라도 교단에서 추천하는 이유는 앞에 말과 같다.)
우리는 성경을 성경으로 바라보는 진정한 의미의 성서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성서를 믿으라는 말은 아니다. 바로 성서를 통하여 만나고 바라볼 수 있는 하나님을 따르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칫하면, 성서문자주의에 빠져들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와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뜻을 좇아 사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이기에, 나약한 존재이기에 날마다 그분을 따라 살기도 바쁘다. 그래서 더욱 더 성경을 읽고 그 안에서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지를 배워가는 날마다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신학자가 되어서 올바른 신앙위에 바로 서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하며 이 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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