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성경에는 없다 오경준 지음 (서울 : 홍성사, 2004)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각 교단의 신학과 담임목사의 철학을 더하며, 거기에 우리 자신의 사상이 더하여져서 성경을 바라보는 렌즈를 갖고 있다. 이 렌즈란 사람들마다 고유의 색깔이 들어가 있어서 자칫하면, 남들과는 전혀 다른 칼라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서 성경에서 가리켜주고 있는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왜곡된 시야로 성경을 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 본서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부제로는 ‘왜곡된 신앙지식을 바로잡고, 성경에 재미를 붙여 주는 흥미진진 성경탐구서’라고 되어 있다. 부제를 기준으로 살펴보자면, 성경을 읽어 가는데 있어서 가질 수 있는 의문과 성경 공부 때에 나올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한 알찬 해설서로서의 기능도 담당한다고 보인다. 이와 같은 분류의 책을 보자면 저자의 서적 2탄『우리가 잘 모르는 것들 성경에 있다』와 민영진 박사의『바이블 FAQ』같은 책이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 먼저, 본서에 대해서 탐구(?)하여 본다.
먼저 본서는 총 31가지의 질문을 3개의 분류로 나누어 놓고 있다.
⑴성경에 이런 인물은 없다
⑵성경에 이런 구절은 없다
⑶성경에 이런 사상은 없다
이와 같은 분류를 통하여서 31가지의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 중에서 필자는 ‘탕자의 못된 형은 없다’와 ‘은혜 넘치던 베데스다 연못은 없다’, ‘동물이 가는 천국은 없다’를 흥미롭게 보았다. 언젠가 한 번 언급한 것으로 기억나는데, 저자의 학풍이 어떠한지를 염두에 두면서 책은 읽어야 한다. 저자는 서울신대(성결교단)를 나와서 연세대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학자이며 목사이다. 자세한 학위는 구약학을 목회학 석사로 , 신약학을 신학석사로 밟았으며 지금은 박사과정중이라고 한다. 즉, 장로교 합동 측에서 보기에는 상당히 열려있는 학풍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감리교단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보았을 때에 개교회가 속한 교단의 입장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른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위에서 주목한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탕자의 못된 형은 없다.’는 예수님께서 말하신 비유의 내용이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본문을 읽어나가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던 어떠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이것을 저자는 발견하여서 우리에게 소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탕자의 형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일부분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으며 형으로서 멈춰 있는 것이 아닌 아버지와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 이것을 요구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물론, 돌아온 탕자에 관한 다른 시각도 존재하며 우리가 평상시에도 보아왔던 시각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한한 채광장과 같다. 끊임없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위의 성경해석만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한정적일 수 있음을 지적한 좋은 사례라 본다.
다음으로 ‘은혜 넘치던 베데스다 연못은 없다.’는 것을 주제로 하여 나온 장에서는 다른 성경 본문을 인용하면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천사일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주시기 원하시기에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그런 연못을 보고 계시진 않으셨을 것이란 관점을 제공하는 글이다. 우리는 흔히 베데스다하면 은혜가 흘러넘치며,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던 곳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막상 그곳을 상상하여 돌아보면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이면 싸움터로 변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보았을 때에 과연 하나님의 거룩한 천사가 내려왔던 것인지, 아니면 사탄의 놀음일지는 의문스럽다. 즉, 올바른 영적 분별력을 통하여서 치유의 사건도 바라보아야 함을 가르쳐주는 글이다.
마지막으로 ‘동물이 가는 천국은 없다.’를 살펴보겠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다. 우리의 친구로서 다가오는 (애완)동물들을 보면, 어쩔 대는 정말로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의리를 다하여서 끝까지 주인의 무덤 곁을 지키고 있는 개라던가, 불이 나자 털에 물을 적셔서 불을 끄던 일화 등등 사람보다 나은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사람은 배신하지만 동물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모쪼록, 필자는『고통의 문제』라는 C. S. 루이스의 글을 생각해보았다. 물론, 평신도의 입장에서 고통에 대한 신학적인 내용을 썼기에, 우리가 지금 살펴보는 책보다는 신학적인 측면에서 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도 우리의 죄악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을 수 있다는 통찰을 기억하면서 본서를 읽으면 동물에게 혼은 있으나 영이 없기에 그들이 천국에 가지 못함을 얘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답답할 수도 있다. 물론, 동물이 살고 있는 이 땅 위에서의 삶도 주께서 보시기에 합당하게 천국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을 해야 한다. 다시 돌아와서 저자가 의미하는 바를 떠올려보자. 결국에 저자는 동물을 사람처럼 영이 있는 존재처럼 만드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영 · 혼 · 육’ 중에서 영이 있는 피조물은 인간뿐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의도하지 않는 상황에서 동물을 인격화 시키고 더 나아가서 영이 있는 존재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우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저자는 이것을 유의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잡아주기 위한 글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잘못으로 인하여 동물이 받는 고통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른 때와 다르게 조금 서평이 길어진 듯하다. 본서를 읽으면서 신학적인 지식과 더불어 신앙인으로서의 중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를 발견하였다. 물론, 조금은 보수적인 면이 비쳐질 때도 있으며 반대로 진보적인 면이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물론, 저자처럼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우리는 아니기에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바른 신앙관을 갖기 위하여 성경을 날마다 상고한 베뢰아 사람들의 본을 따라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언제나 주의 영광을 위하여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연구하여 주위 이웃에게 환한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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