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행구절광증 새뮤얼 샌드멜 지음 (서울: 알맹e, 2022)
자신의 전공이 아니고 관심 가는 주제가 아니라면 읽기에 쉽지 않은 경계선을 만드는 것이 소논문이다. 왜냐하면, 소논문이니까. 논문이 주는 괴리감을 갖기에 (아니면 왠지 모르게 부담된다) 일반적인 수필이라면 모를까 읽고 싶지 않은 게 보통이지 않을까.
그런 아골 골짜기를 이겨내고 읽기를 결정한 당신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대단한 선택이니까. 특별히, 이 소논문을 출판한 곳은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접근하도록 유혹(?)한다.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논문이 미번역되어 접근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언어의 장벽을 해결해주는 결정이기에 말이다(쉽게 말해서 꼭 필요하지만 분량이 적고 돈이 되지 않아 일반 출판사에서 내기에는 부담스러운 그런 것이다).
좋은 역자와 더불어 소개의 글을 써주셨다는 것과 에이전시에서 사회 환원(?)처럼 느껴지는 출판을 결정해서 자매사를 통한 저렴한 공급을 위해 전자책으로 보급해주셨다는 것에 감사를 드려본다. 그리고 번역된 제목에 대해서 생각을 가져본다.
원제목으로 가자면 Parallelomania 이라는 용어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소개글에서 자세히 해주시기에 아무 문제없이 읽어나가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증’이라는 표현이 의학용어로 많이 사용되기에 다소 거리감있게 읽어지려나 싶었지만 전혀 아무런 부담 없이 잘 읽어졌다. 이 또한 역자와 편집자분들의 노고이리라. 다시 한 번 감사하게 생각한다.
30쪽이 채 되지 않는 소논문이지만 갖게 될 인사이트는 충분한 분량임을 떠올려보며, 개인적으로 공감되었던 부분을 적어본다.
연구자에게 중요한 것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 실제이다. 11쪽
완전한 정확성과 온전한 깊이는 학문의 세계에서 때때로 추구해야 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다. 28쪽
학자적 양심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학자가 아니더라도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라면 인정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특별히, 공학 계열에서는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 데이터를 통해서 일련의 분석을 이루어나가기에 조금 더 구체적 실제에 다가가기 쉽다. 하지만 인문학 계열에서는 정량적이기보다는 정성적 부분에 집중이 되다보니, 데이터의 출처 혹은 가감여부의 확인에 어려움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리고 현대에서의 학문은 한 분야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공부해왔던, 연구해왔던 분들이기에 조금이라도 다른 곳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음을 인정하고 협력해야 함을 떠올려보게 된다.
생각을 정리해본다. 이 소논문이 나온 시기를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미래적인 것이었다고 봐야 할까 싶은 부분이 많다. 학자라면, 자신의 지식의 장점과 한계를 알기에 이를 잘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과연 나는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배울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갈수록 아는 것이 적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 옛날의 박사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와 지금의 박사의 의미는 다르다. 이 텍스트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혹은 변화가 이루어졌는지 고민해 본다. 그래서 요즘 읽고 있는 다른 책에도 적절한 성찰을 더해 주리라 생각하며
참고: 이 책은 전자책으로만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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