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이라는 말은 여러모로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단어인것 같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는 A라는 답변으로 반대로 이러한 사항에서는 B라는 답변으로 취할 수 있으니 말이다. A와 B라는 서로 반대적인 입장의 글을 쓰더라도 모순적이지 않다고 말 할 수 있는 방법이랄까.
합리적 비혼주의자라는 말은 다시 생각해보면 비혼주의자는 합리적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결혼하는 사람들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까지 다가간다. 혼자 사는 것만이 합리적인 것인가.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이 곳에서 살아가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비혼주의자와 연애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자신이 비혼주의자임을 밝히면서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숨기고서 하는 사람은 예의 없는 사람이기에 말이다. 아니,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되며, 공동체를 일구어 가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사회라는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호모 사피엔스의 삶을 영위해 갈 수 없다. 혼자라서 좋을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나타나는 외로움은 어떻게 할까.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그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결혼을 선택해서는 안 될 것이고, 연애조차도 나쁜 일이다. 그 외로움의 원인을 찾아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앞으로 정진해 나갈 때에야 비로소 연애를 할 수 있고, 결혼이냐 비혼이냐는 선택을 올바르게 할 수 있다.
요즘은 비혼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예전 표현으로 하자면 독신으로 사는 것은 그만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다. 홀 몸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 결혼하지 않음이라는 의미를 갖는 비혼을 생각해 보아도 좋겠다. 결혼하지 않음, 자녀가 없음, 노후 대책만 준비하면 됨으로 귀결되어지는 삶이니까 말이다. 물론, 요즘처럼 욜로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메멘토모리는 생각하기 싫은 지혜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비혼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행복 그리고 너의 행복은 따로 있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기에 서로에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자연인처럼, 홀로 산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면 모를까. 남을 의식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 않은가. 멋진 인생이라는 스스로 보기에 부족함 없는, 그리고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다가는 것이 아닐까.
참,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인으로서의 글이라면 비혼주의자로 안내하는 글을 읽어도 괜찮을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삶의 터전을 벗어나서 다른 곳에서 그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며 자신의 소득원으로 생각하려는 사람의 글은 설득력도 당위성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왜나하면 우리는 지금 이 곳에서의 삶을 살아가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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