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신학, 신앙) 서적

예언자적 상상력을 읽고

읽고쓰고나누고 2019. 10. 6. 21:30

예언자적 상상력 월터 브루그만 지음 (서울: 복 있는 사람, 2009)

 

   예언자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는 글자가 아니다. 그 삶을 통해서 나타내는 것들이 여간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당대의 모습에서는 빛을 보기 어려운 존재들이 예언자가 아니던가. 모두 화평하다고 하는 가운데에서 화를 선언하고, 모두 절망하는 가운데에서 희망을 선포하는 자리라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안전한 미래임을 선포하는 것이 아닌, 화가 미칠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저자의 말처럼, 부르주아적인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이기 때문이리라.

 

   본서는 모세와 애굽이라는 대결 구도적인 흐름으로 시작하여 선지자들과 왕권시대(솔로몬으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와 제국으로 이어지는 예언자적 흐름을 통하여 논지를 이어나간다. 어떤 것이 안주하는 삶이고 이와는 다른 삶의 모습, 즉 예언자적 상상력을 발현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인 것처럼, 예언자는 항상 현실에 안주하여 있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간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의 울부짖음을 듣는다. 저자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공동체를 구성원들을 찾아나서는 것이 예언자가 아닐까.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믿지 못한다. 132p.

 

   우리는 하나님을 따른다고 말하지만, 위의 문장처럼 이미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장 진보된 과학에 의존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날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신앙인이다. 무너지고 넘어지더라도 함께 하여주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피해 갈 수 있는 분이 아니다. 116p.

 

   특별히, 위의 문장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임을 믿고,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말이다. 앎을 삶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안주가 아니라 예언자적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필자도 여기에 동의하는 바이다. 이 예언자적인 삶을 통한 성경읽기를 배워보고 싶으시다면 본서를 읽어보시길 권하여 드린다.

 

이미지 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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