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는 그리스도인 김근주 외 6인 지음 (논산: 대장간, 2018)
‘노동’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빨간색 버튼 클릭이 되는 분들이 계신다. 노동 말고 ‘근로’라고 쓰라고 강요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이 계시고 말이다. 마치 ‘인민’이라는 단어가 매우 좋은 의미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적 차이로 인하여 나누어져 버린 저 윗동네에서 자주 쓰는 말이라 기피하는 분들이 많이 생긴 것처럼.
그럼에도 매년 돌아오는 5월 1일은 노동자의 날이다. 그리고 이 노동자의 날을 기억케 만드는 절규하던 전태일이 생각나고, 조금 더 한국교회의 역사를 살펴본 분들에게는 영등포 산업선교회를 아는 분들도 계시고.
이번에 읽어본 책은 작정시리즈로 나왔던 노동이라는 주제를 갖고 연속 세미나가 이루어졌던 (대다수의) 느헤미야 집필진의 내용이 책으로 엮어져 나온 것이었다.
목차를 살펴보면 노동에 대해서 구약으로, 복음서로, 바울 서신으로, 교회사로, 윤리학으로 살펴본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문장들은 도입부의 김근주 교수님의 글과 배덕만 교수님 글, 김동춘 교수님의 글이었다.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는 노동에 대한 이해는 사뭇 시대적 한계를 담고 있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잘못된 부분을 인식하고 개선하고 나아가려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성서 안에서든 교회사에서든).
그러나, 언제나처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의 모습은 이 책이 나온 시기보다 나아짐이 있었을까 싶은 문장을 보게 되었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봉사와 희생을 빌미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은밀한 노동수탈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교회, 선교단체, 기독NGO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151쪽
모든 교회가, 단체가, 이러지 않겠지만 젊은 사역자들이, 운동가들이 사라져간 이유에는 이 또한 포함되어 있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사회에만 존재하는 열정페이가 아니라 (신앙)열정페이도 있었음을 말이다.
그래도 날마다 나아지는 것은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고 싶었던 이들에 의해서 (성서의 표현을 빌리면) 무너진 담을 수축하는 것처럼,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만들어 가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어디에선가 부교역자들은 주일을 위해서, PPT를 만들고 주보를 편집하며 인쇄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보다 훨씬 많은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평신도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눈물 젖은 커피를 마셨음을 알기에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노동과 예배는 분리되지 않으며, 사람의 노동은 그 자체로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18~19쪽
위 문장처럼, 일이 예배가 그리고 영성으로 나타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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