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지배사회에서 살아남는 것 - 호모 이밸루쿠스를 읽고 생각하다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느껴지는 인간은 살아감에 있어서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더라도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노력해야 한다. ‘나’라는 존재가 혼자 존재하기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존재하기에 ‘자아’가 존재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세대가 흘러감에 따라서 많은 발전(혹은 진화)을 이룩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호모 시리즈’로 불리는 진화의 한 형태인 ‘호모 이밸루쿠스’라는 단어를 제시하는 책까지 이번에 읽게 되었다. 과연 이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내용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았다.
우리 인간 중에서 누군가는 바쁜 도시의 시내를 걸어가는 사람을 보며 일명, 얼평(얼굴평가의 줄임말)이라고 부르는 행동을 한다. 아니면 직장 상사의 잘잘못을 동료와 나누는 뒷담화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다 평가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인지하든 하지 못하든 하고 있는 평가하고 있는 존재, 이 존재를 이밸루쿠스라는 합성어로 저자는 설명한다. 이 단어의 주인공이 살아가는 사회는 평가지배사회라고 한다. 과연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 아니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 대비책을 갖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에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하여도 <교육과정 및 교육평가>라는 과목을 배울 때에 느꼈던 평가 방법에 관한 방법론 그리고 이 평과에 대한 순기능적인 측면과 역기능적인 측면을 다루는 교육 철학서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중간쯤까지 읽어보니 아래와 같은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까지 나왔다. ‘평가’의 시작은 무엇인지 마치, 닭이 먼저인지 아니면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관계처럼 말이다. 이를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이야기했다.
학교교육을 통한 시험과 평가 그리고 그 결과로 주어지는 성적이 학벌을 낳았는지, 아니면 그 과정이 이미 존재하는 학벌을 더 강화시키는지 선후관계는 알 수 없다. 63쪽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 중에서 학벌중심사회라는 것이 안타까운 상황임을 적나라하게 나타낸 문장처럼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조선 시대 때부터 시작된 관직의 임용을 위한 과거시험이 시작일지 모르겠다. 유서 깊은 이 시험이 지금까지 내려와서 하나의 굳어진 사회의 모습일지도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바꾸고 싶지 않은 이들이 있을 것이란 의심도 하게 된다. 이를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은 풍자해내는 드라마까지 나온 것이다. <스카이 캐슬>이라는 작품으로 그려낸다. 저자도 이 드라마를 인용해서 왠지 더 서글퍼졌다. 우리의 자화상 같아서 말이다.
2021년의 청년들은 공정을 원한다. 그리고 불평등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평등이란, ‘기회의 평등’과 ‘조건의 평등’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만 이보다 ‘평등’이라는 단어만을 중요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나의 기회를 빼앗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가까이는 입시, 멀리는 취업의 자리를 도둑맞은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싶다. ‘나에게도 올 수 있던 기회였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더 좋은 환경을 원한다. 예를 들자면 더 좋은 교육을 받고 싶어 한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본능이 아닐까. 이 본능 중에서 자신의 자녀들이 더 좋은 것을 가질 수 있기를 더 좋은 곳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본능도 있다. 그래서 과제도 봐준다. 문제집도 사준다. 자신의 앎보다 더 많은 수준으로 나아가면 학원을 끊어주거나 개인과외까지도 시킨다. 그래야 이 사회에서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볼 수 있지 않는가라는 신기루를 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은 없다. 몸과 마음만 소진될 뿐이다. 223쪽
부모가 제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본인이 변하지 않으면 달라질 수 없다. 그냥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이렇게까지 노력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책의 저자가 계속적으로 이야기하고 강조한 ‘평가’에 지배받고 살아가는 존재가 우리이기 때문이다. 초중고 학생은 학교의 선생님께 평가받는다. 대학생들은 교수님의 학점으로 평가를 받는다. 취업준비생은 인사담당자에게 평가를 받는다. 회사원들은 직장의 상사에게 평가받고,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에게 평가 받는다. 이 평가를 통과해야만 진학할 수 있고, 취업할 수 있고 진급 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적극적으로 수용을 해야만 가능한 것인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수긍해야만 하는 것인가. 사실 이런 질문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가 현실이 아닌가싶다. 삶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그저 주어진 오늘 하루를 감사함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평가지배사회에서 호모 이밸루쿠스는 평가를 하거나 받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긴다. 그래서 평가에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263쪽
어쩌면 우리는 묻기를 두려워하는 사회, 아니면 제한받고 있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일지 모른다.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를 따라서 나아가는 존재이다. 비유하자면 자신이 달려가지만 어디를 향해 뛰어들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눈을 가려버린 말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평가라는 것은 누군가를 구분한다. 얼마나 기준에 부합하여 잘 해냈는지 아니면 미흡하여서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로 사용한다. 혹은 기준선으로 잡고 이 수준이 되지 못하는 이들을 걸러내기 위한 필터처럼 사용한다. 그리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받아들인다.
위와 같은 시스템을 통해서 우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것을 치른다. 또한, 공무원 임용시험을 치른다.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치른 시험의 결과 내에서 남보다 우위를 점해야만 한다. 마치 치킨 게임처럼, 레드 오션처럼 제한된 재화를 놓고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과연 이렇게 경쟁해야만 하는 것인지,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 누가 뭐라 하여도 인간은 열린 미래를 향해서 발을 내딛는다. 나의 삶을 옥죄어 오는 시스템적인 한계가 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다. 이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긍정의 힘을 믿고 싶다. 그러나 자신이 느끼는 평가에 대한 두려움 혹은 어려움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길 원한다. 진정 자아가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전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평가의 지표도, 방법도, 평가자의 태도 또한 계속 개선되어진다. 아니,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혹은 진화되고 있음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보다 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언제나 이것은 시스템이기에 그리고 누군가를 괴롭히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인지하기에 늘 감시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천국이 되지 않을지 생각해본다.
※ 이 글은 8월에 올렸던 <호모 이밸루쿠스> 관련 글보다 생각을 전개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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