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어거스틴의 고백록이라 하면 기독교의 고전 중에 하나이며, 우리가 필히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불린다. 또한, 그가 허랑방탕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리스도의 긍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많은 일조를 하였음을 익히 알고 있다. 무화과나무 밑에서 기도할 때에 아이들이 들어라 읽으라고 하는 노래 가사를 듣고 성경을 집어 들어 읽을 때 로마서 말씀이 나오며 그가 회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가?
배나무에서 친구들과 함께 도둑질하였던 어거스틴이 이제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회심까지 하게 되었으니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문장의 고백은 경이로운 마음을 품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내용이 풍부한 본서는 총 13권으로 구성되어있었다. (대한기독서회에서 출판된 개정완역판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권’이란 책의 권수가 아닌 현대에서의 의미로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책은 9권까지는 어거스틴의 과거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10권에서는 현재의 모습, 11~13권 사이에는 시간과 영원, 무로부터의 창조, 질료와 형상, 창세기 1장에 대한 은유적 해석들을 그리고 있다. 즉 미래적인 내용을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책 속으로 다시금 들어와서 그 내용을 본다면, 먼저 눈에 띄는 것 중에 하나는 문법일 것이다. 그 이유인즉슨 1~9권까지의 내용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인데 순차적으로 그 내용을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상세히 기록하는 반면 중요치 않다고 느껴지는 부분에서는 함구하거나 건너뛰는 것을 설명한다. 또한 수사학을 공부했던 당대의 석학인 어거스틴은 배나무와 무화과나무를 대비시키며, 친구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을 대비시키는 등 수사학적 문장 구성을 하기도 한다. 이것을 어찌 의도적이라 하지 않을까? 읽다가 보면 흡사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의도한 바를 따라가는 필력을 볼 수 있다.
또한 생각해보건대 어거스틴은 자신의 책에서 어머니의 얘기는 자주 하는 편이지만, 아버지는 그다지 논하지 않는 인상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아버지의 신앙적 영향보다 어머니의 영향이 컸음을 반추하는 것이리라. 시나브로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현대의 교회 모습을 보면 어머니의 사랑보다는 아버지와 같은 유의 리더십을 원하며 따라가고 있고, 강인함을 요구하는 인상을 보인다. 그러나 초대교부였던 어거스틴의 글에서는 모성애를 느낄 수 있음을 안다.
한편 어거스틴은 철학자이기도 함을 느낀다. 그의 글에서 묻어나는 신학의 냄새는 없앨 수 없을 것이다.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계획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발전된 것이 예정론이지 않은가?
더불어 113페이지의 내용 (제3권 11장 19절에 나온) ‘잣대’는 성서신학 과목을 떠올리게 한다. 책에서도 각주로 설명이 되어 있는데, 이는 고대 교회에서 이단을 방지하기 위해 책정한 신앙의 기준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당시에도 많았던 이단 문제가 지금까지 내려와서 하나님의 교회라던가, 구원파 등등이 있는 것을 봐서도 말이다. 정말로 올곧은 신앙이 필요하며 오직 성경, 오직 믿음이 중요함을 보게 된다.
앞에서 잠시 말했던 모니카의 기도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에 도전이 된다. 위의 문장에서 얘기했던 잣대가 나오는 것이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꿈인데 여기에서 어거스틴이어머니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변화될 것이란 환상을 본 것이었다. 그렇다. 여기에서 도전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마치 한나가 입모양만을 보이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처럼, 모니카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기도를 드린다면, 마침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임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면 아니겠지만 말이다.
또한 책에서는 당대의 문화인 교육 환경과 가족의 구성 위락 요소들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든다. 당대에 있어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로마를 보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랄까? 왜냐하면 이 작품 속에는 어거스틴의 삶이 나타나기 때문에 극장과 같은 곳에서의 관람 내용이나 키케로의 글과 같은 문학 작품을 인용하기도 하며 당시의 선생들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며 무엇을 교재로 삼고 상벌의 모습도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알려면 역사적인 고증을 통해서만 알 수 있고 아니면 TV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볼 터인데, 이러한 작품을 통해서 보게 되니 좋지 아니한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신앙적인 본보기 보여주며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어머니 모니카의 모습을 통해서 가족 전도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으며 중생케 된 자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어거스틴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이 죽기까지 카르타고의 예배당에서 있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수업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남겼던 여러 작품들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반달족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교회당이 전소되지 않아서 남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역사적 산물인 북아프리카 교회의 당시 신앙을 알 수 있고 또한 그것이 바탕이 되어 현재의 기독교 신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진정 어거스틴은 신학자요, 신앙인이요, 문학가이며, 사상가이다. 그런 그를 더욱 더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고백록』이다. 이런 고전을 더욱 읽으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가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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