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가 자유주의에 답하다
존 스토트, 데이비드 에드워즈 지음 김일우 옮김
(서울: 포이에마, 2010)
[37년 전의 문장이 15년 전 번역되어 노오랗게 익은 후 최근의 나에게 읽어진 것에 대하여]
우리 시대 거인들의 발자국 시리즈 2권을 이제야 읽었다. 공방전처럼 느껴지는 문장의 대립과 존중의 언어가 펼쳐지는 책이자 ‘복음’과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돌아보게끔 만드는 이야기. 책이 출간된 지 오래되었지만, 그 오래됨이 클래식이 된다고 적을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
영국적인 상황에서 당대의 한계에도 여섯 가지(‘복음의 능력’, ‘성경의 권위’,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의 기적’, ‘성경과 행위’, ‘종말론과 구원’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나누는 이야기는 누구의 의견에만 동조하게 되지 않고, 적절히 동의하고 반대하고, 수정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도 책 한 권이 나올 수 있기에 1장부터 천천히 읽어나갔다. 또한, 성경의 권위와 관련된 무오성 논쟁이 다루어지고, 십자가와 대속, 기적에 대한 정의, 현대사회에서의 기독교가 갖는 도덕과 문화, 종말론에 대한 함의 등 유익하다.
과거의 나는 복음과 자유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메트로놈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논쟁에 갇혀있지 않고, 나에게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성경을 통해서 그분을 만나고 바라보게 되기에 책의 종교이지만, 그 책을 믿는 게 아니라 그 안에 표현된 주와 그리스도를 따르고 믿기 때문이다.
도주하는 노예들의 무리에 불과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집트 군대의 무기력함을 목격하고 아울러 자연조차도 자신들의 편이 돼 도움을 주는 것을 발견하고서, 점점 성장해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 나아가 하나님의 자비하신 목적을 수행하는 특별한 도구가 됐다는 것이 진짜 기적이다. 316쪽
과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류 있는 해석인 반면, 신학(혹은 ‘전통’, 신학적 고찰)은 성경에 대한 인간의 오류 있는 해석입니다. 581쪽
소위 자유주의 신학에서 밝혀내는 예수의 참모습과 복음주의 신학에서 고백하는 예수는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하나로 이루어진 분이지 않을까. 위에 적은 문장은 데이비드 에드워즈와 존 스토트의 글이다. 자유주의 하나만으로 신앙(학)을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복음주의 신앙(학)만으로도 불가능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앎은 온전함을 이룰 수 없으니.
그럼에도 우리는 날마다 성서의 원문을 찾아간다(파피루스를 복원하는 노고에 감사드리며). 적어도 우주적 종말이 아니라 개인적 종말이 다가오기 전에 현재까지 발견된 문헌들의 복원 작업이 끝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며.
[책의 읽기를 돕기 위하여]
데이비드 에드워즈의 글로 시작되어 존 스토트의 답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각 장(챕터)의 길이가 생각보다 길다(대략 100쪽). 더하여 출간된 지 오래되어 아쉽게도 절판되었으니 읽어보고 싶다면 도서관이나 중고 서점을 알아보시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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