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인문주의에서 배운다 양명수 지음 (서울: KMC, 2014)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이 엄청나게 인기를 끌던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조용해졌다. 오히려 숲과 나무를 다 볼 수 있는 능력자가 되길 원하는 곳이 되어간다. 인문학, 아니 인문주의는 무엇인가.
사람을 위한 교육을 모토로 하여 교육은 발전해왔다. 그래서 문과와 이과를 나누던 시대에서 살았던 나 같은 존재와는 다르게 요즘은 고교학점제와 코딩 교육, 전자 교과서, 더 나아가서 AI 교육까지 이루어진다. 더더욱 미래에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게 아닐지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하다.
새로운 기술과 표현 방식을 늦지 않게 도입해야 하는 회사는 바로 도입한다. 이와 다르게 교육과 의료는 조금 더 보수적으로 접근하며 도입하기에 그 시기가 늦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보다 더욱 느린 곳이 있다. 바로 교회가 그렇다.
교회는 과연 인문적인 소양과 방법에 대해서 배울 준비가 되어 있을까. 신본주의, 인본주의라는 단어는 자주 언급되어도 정작 하나님에 관하여 혹은 사람에 관하여 듣기를 어려워하는 곳이 교회인데 말이다.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수업을 듣는다면 하나님론, 인간론과 같은 내용을 배울 수 있지만, 졸업과 동시에 저어기 기억 속으로 어딘가로 이동된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신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이야기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고 나누어야 하는 내용이 신학의 일부분이 된 철학적 사고이자 철학이 녹아든 인문주의다.
우연히 저자의 글을 읽게 되었고 좋았었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출간되고 강산이 변할 만큼 흘렀음에도 교회에 적용할 수 있다. 아직도 변하지 못해서 아쉬운 부분이 보이는 교회의 모습 때문이랄까. ‘믿음’, ‘신앙’, ‘죄’, ‘교회’와 같은 주제들을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신학으로 또한 인문학적인 성찰로 살펴보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대성에 갇혀서 읽어질 글이 아닌, 지금도 동일하게 읽고 생각할 수 있는 내용들로 다루어진다.
교회는 윤리를 선포하는 곳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윤리적 효과를 일으키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앙의 목표가 도덕성은 아니지만 도덕성은 신앙의 중요한 부산물로서, 신앙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지표역할을 한다. 30쪽
기독교는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폭력성을 직시하였다. 기독교는 그것을 슬퍼하는 종교이다. 99쪽
오늘날 국민 주권의 시대에 혹시 국민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 정치가의 경우엔 그가 아무리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그의 대통령 당선과 하나님의 뜻을 일치시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종교 박해의 시대에 종교를 수고하기 위해 등장한 인물도 아닌데 말이다. 210쪽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고 십자가로 나아가셨던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에게 하나님 사랑(신본주의)과 이웃 혹은 사람 사랑(인본주의)은 따로 있는 게 아닌 같이 가야 하는 길이다.
인문학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과 신앙 언어의 홍수 속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읽어보시길 권하여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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