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이며 공적인 신앙 윌리엄 스트링펠로우 지음 김가연 옮김 (서울: 비아, 2021)
주의: 이 글을 읽고 책을 읽으신다면 라떼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읽어보시겠습니까?
쌍팔년도 아니, 지금이 그리스도교 박해기도 아닌데 공적인 신앙고백을 해야 할 자리가 존재할지 의문이 듭니다. 자신의 신앙과 삶을 고백해야 하고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필요한지 묻게 됩니다. 그럼에도 성적 소수자이기에, 다문화가족이기에, 사회적 약자이기에 자신의 신앙고백이 진실함에도 불구하고 묻히기도 합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가운데서.
신앙은 개인에게 다가오는 주님과의 관계, 즉 사적인 부분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공적으로 표현되고 살아가게 되는 고백적인 부분을 아우릅니다. 그럼에도 어느 신앙인은 사적인 부분으로 축소하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공적인 대화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나타난 치우쳐진 신앙의 모습은 어디쯤에서 멈춰있는지 보게 만듭니다.
제가 이번에 윌리엄 스트링펠로우의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비상계엄 사태에 있습니다.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혹은 극우거나 극좌이거나 신앙인으로서 지켜야만 하는 최소한의 양심과 모습이 어디에서 보이는지, 무엇이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만드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배경을 살펴봅니다. 유수의 영국과 미국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평신도이자 신학 에세이를 쓰고 강의하는 평신도 신학자입니다. 20세기를 살아갔던, 날카로움이 묻어나는 글의 저자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종교적 인간과 신앙적 인간의 구분을 싫어하지만, 저자는 종교적 그리스도인과 성서적 그리스도인을 구분합니다. 또한, 개신교의 종교적 모습에서 나타나는 선 긋기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문장을 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스티그마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과 다르게 부드럽고 순하고 아름답게 포장하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폭탄을 던짐으로 신앙이 무엇인지 돌이켜 보게 만들 글로요.
삶의 자리가 존재하기에 그가 살아가던 시대와 활동했던 이스트 할렘이 배경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또한, 성공회의 신앙 배경이 묻어나는 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당시보다 지금이 더더욱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신앙이, 복음이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요.
오늘날 개신교의 문제는 '종교의 자유'를 너무 소중히 여긴 나머지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자유'를 포기하는 데 있다. 47쪽
바울이 외쳤던 복음, 그가 살아냈던 복음이 주는 자유를 놓치고 있는 현대의 그리스도인.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가 아닌,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함에도 그저 좋은 이웃 탐 아저씨가 되고 있음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저자의 다음 문장은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살아가는, 살아있는 신앙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떠올리도록 말이지요.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증언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문제를 연구하고 토론하기 위해 지역 교회에서 모임을 꾸린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노동조합이나 정치집단, 시민단체 등 사회생활 전반에 온전히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이 실제 현장, 즉 갈등이 일어나는 곳, 정치, 문화, 사회적 결정이 일어나는 곳, 법을 제정하는 곳에 있을 때만 증언은 가능하다. 87쪽
책은 상당히 얇습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울리는 메시지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다시금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복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성직자, 신학생들은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정교하게 하려는 데만 급급할 뿐, 정작 성서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치 무지하다. 그들은 성서 연구 방법론에 대해서는 많이 배웠을지 모르나 정작 성서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설교할 때도 성서에 의존하려 하지 않는다. 오늘날 설교자들은 성서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에 관해 설명하는 대신 어떤 사안에 대해 논평을 하거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전하거나, 애국심을 고취하는 연설을 하거나, 시를 암송하거나, 처세술을 이야기하거나, 자기를 계발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거나, 사회를 분석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감성을 자극하는 말을 하거나, 만담을 늘어놓는다. 이처럼 개신교 설교자들이 성서에 바탕을 두지 않은 채 설교를 하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회중 앞에서 성서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열어젖히는 일이야말로 종교개혁이 거둔 가장 커다란 역사적 성취였기 때문이다. 76~77쪽
강단에서 외치는 설교가 예언자적 외침이 아닌, 한낱 사설이나 선동이 아니길 바라는 맘을 담아 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성서의 말씀을 해설하고 선포하는 성직자를 그리워합니다.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개별자로서의 신앙인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서 선포해야 함을 전달하고요.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하며, 책을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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