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종교학

바다의 문들

읽고쓰고나누고 2023. 4. 6. 23:39

바다의 문들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 지음 (서울: 비아, 2021)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때가 되면 나에게 읽어보라고 손짓하는가 보다. 그리고 비아에서 독서운동 회원이라고 보내주셨던 당시의 신간을 이제야 보게 된다. 물론, 이 책에 대해서 그리고 주제에 대해서 포스팅과 청어람 챌린지를 통해서 <신학이란 무엇인가 Reader>에서 보고 읽고 나눴었기에 더욱 기다려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한다고 따라서 하는 사순절, 그중에서도 고난주간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기에 세상의 피조물들이 아파하는 순간들을 기억하고 보듬고 싶었는지 모른다. 덕분에 <무모한 희망>을 읽어보며 세상의 생명들을 돌아보는 기회도 가졌고, 이번에는 <바다의 문들>을 통해서 4월의 아픔도 다시금 돌아보게 된 것이리라.
 
인도양의 쓰나미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고, 그와 관련된 글이 책이 되었다. 주제 자체가 갖는 질문에 관심이 있었다. 또한, 그의 문장이 갖는 문체들이 좋았다. 돌아보니 저자의 전공이 ‘철학적 신학’이라는 나의 관심사와 같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볼테르로 시작해서 유클리드 기하학,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글감을 가져다가 세상의, 그리스도인의, 현대의 신정론을 살피고 비판하고, 돌아본다. 동방정교회의 신학자로서 전통을, 교부를, 신학을 살핀다. 지금 이 삶의 자리를 지탱하게 만들어 준 전(前) 존재들을 말이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정말 강렬한 문장으로 섣부른 신정론을 말하는 이들에게 그 잘못을 하나씩 밀 까부르듯 벗겨냄을 보게 된다. 2부에서는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승리를 저자만의 (혹은 정교회의) 신학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어나가며 수미상관의 형태의 문장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었고, 무엇보다 죽음에 천착했던 나에게 다시금 부활을 바라보게 만드는 고난주간에 어울리는 문장을 만난 것도 좋은 수확이자 수학이었다.
 

삶을 살아가며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어코 입을 열고야 만다. 20쪽
다른 이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는 말은 자신의 경건함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도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된다. 136쪽

> 수미상관으로 읽어졌다.
 

복음서 그 어디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죄, 고난, 악, 죽음을 하느님의 영원한 활동으로, 목적의 일부로 대하고 행동하시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122쪽

> 당연한, 그리고 통쾌한 문장.
 
서방 교회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개신교인이라서 동방 교회의 신학은 낯설다. 그러나 지근 거리에서 살아갔던 이들의 신학이기에 왠지 모를 정감 어림을 느끼게 되고, 우리의 색깔이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지금 여기에서의 신학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다시금 책의 제목을 생각해본다. ‘바다의 문들’이 열린 것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물은 그 근처에서 터전을 잡고 살던 이들에게는 너무나 커다란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 된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아픔, 그리고 멈추지 않는 슬픔이 찾아온다.
 

동방 교회 전통도, 서방 교회 전통도 어린아이의 죽음을 하느님께서 정의를 이루시는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51쪽

 
아픔이 종식되는 그날이 4월의 아픔을 공유하는 이들에게도 속히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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