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물결플러스 5

종교 중독과 기독교 파시즘

종교 중독과 기독교 파시즘 박성철 지음 (서울: 새물결플러스, 2020) 책이 나올 즈음부터 관심을 가졌었다. 그리곤 어느새 서가에 들여놓고 잊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언젠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서 살았다. 그러다가 마주한 어느 페친님의 글 덕분에 + K-정치 상황 덕분에 펼치게 되었고 읽어버렸다. ‘종교’와 ‘중독’, ‘기독교’와 ‘파시즘’ 대립으로 느껴지는 단어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지만,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모습은 두 단어가 합쳐지는 합성어처럼 짝을 이루게 된다. 종교에 중독되어 삶을 놓치고 엉뚱한 곳으로 간다거나 기독교와 파시즘이 하나 되어 철저하게 똘똘 뭉치길 원하는 모임이 된다거나. 종교에 순기능이 있다면, 역기능도 존재한다. 암울한 현실에서 한 줄기 빛이 되는 통로가 되기도 하..

신학과 종교학 2025.02.06

예수는 12살

예수는 12살 조은진 지음 (서울: 새물결플러스, 2020) 자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6살 정도까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나를 키워준 부모님과 주변인들에게서 듣는 목격자의 진술이 아니고서야 (혹은 기록된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없는 머나먼 이야기와 같달까요. 이와 다른 결이지만 성경에서 만나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은 아기였을 때와 12살의 모습뿐입니다. 성경에서는 어떤 일화를 담아내지, 모든 순간 모든 날을 담아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복음서를 통해서 배우게 된 예수님의 모습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궁금한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 이거 어떻게 알 방법이 없을까 싶지만, 비움의 미학도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그 공간을 채워서 읽고 싶은 이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을 위한 맞춤 솔루션이 있..

믿음의 글들 2024.10.05

단숨에 읽는 바울

단숨에 읽는 바울 존 M. G. 바클레이 지음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8) 바알못(바하 말고, 바울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칭할 수밖에 없는 나를 돌아보면서, 대체 사도행전은 어떻게 읽었던 건지 통독은 어떻게 했던 건지 의문 아닌 의문을 가져본다. 바울신학 수업을 따로 듣지 못했기에 (당시에는 종교학 수업을 들어야만 했고, 후에 수업을 듣게 될 기회가 있으리라 믿었던 나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지만, 적어도 로마서 관련 수업은 들었다) 신약의 개론적인 이해만 가진 게 아닐지, 열심히 독서하던 내가 기억난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그리고 성서를 읽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신약성경, 정경화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울의 서신들은(신약학자에 따라서 그 양은 다르겠지만) 읽기..

신학과 종교학 2023.11.08

두 이야기가 만나다

두 이야기가 만나다 안용성 지음 (서울: 새물결플러스, 2020) 어쩌다보니 올해에 들어서고 난 뒤에 요한계시록을 두 번째 읽게 되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역본을 다르게 하여 보게 된 경우였습니다(새 번역과 개역개정). 그러한 가운데에 안용성 교수님의 신간을 이벤트 당첨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동안 관례처럼 여겨져 오던 세대주의적인 해석이 아닌 서사로 바라보는 계시록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감을 안고서 읽게 되었다고 할까요. 처음 마주하게 된 책의 인상은 보통의 주석이나 해설서, 신학 서적과는 다르게 엄청 친절하게 작성된 목차(도표와 그림에 대한 목록까지 기술해준)와 평신도 및 요한계시록에 대한 선이해가 적은 저 같은 사람을 위하여 용어 해설이 책의 도입 부분에 수록되어 있으며, 친절한 참고..

성서에 관하여 2020.12.10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을 읽고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우종학 지음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필자의 예전 기억에 의하면, 창조과학과 관련된 강의를 들어본 기억이 있다. 물론, 그 때 당시에 스스로는 인문계열 전공에 문과를 나온 학생으로 과학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고 봐야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서 돌아본다면 그저 무지했음을 떠오르게 하는 순간이 아닐까. 학문 연구의 기본 중에 기본인 양측 진영의 의견을 들어보아야 함을 놓치고 있었고, 그 내용의 진위여부를 찾아보지 않았던 모습이니 말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이해에 창조와 관련된 생태신학 내지 성서신학의 이해가 들어서면서부터 과학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양서인 일명, 과도기를..

믿음의 글들 2019.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