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에 관한 서적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읽고쓰고나누고 2024. 7. 12. 22:00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루돌프 불트만 지음 이동영 옮김 및 비평적 해제 (남양주: 지우, 2024)

 

일전에 비탈길이라는 표현으로 글을 쓴 기억이 납니다. 비/탈신화화의 길잡이 같은 존재들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돕는 의미로 쓴 부분이었습니다. 이번에 그 본좌격인 불트만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이번에 읽어본 책은 과거에 한 번 번역되어 나왔던 동명의 책을 영문판이 아닌, 독어판에서 번역된 책입니다. 역자가 같은 분(!)이십니다.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독일인 저자가 미국에서 했던 강연과 내용을 영어가 아닌, 본국의 언어로 가다듬고 만든 책을 다시금 학생과 독자들을 위해서 번역하신 감사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신화’. 각각 떼어놓고 보아도 어려운 단어를 뭉쳐서 보게 만드는 불트만의 책. 신학과 신앙, 교단과 교파가 다양한 만큼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도 정말 넓고도 깊게 다양합니다. 탑다운 방식의 신학이 있기도 하고, 바텀업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또한, 교회 정치에서도 각양각색이고요. 그래서 불트만을 찬양하기도 하고, 언급조차 싫어하기도 하는 이들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좋든 싫든, 어디에 있더라도 한 번은 만나게 되는 불트만과 그의 신학은 영미권 신학 또는 개혁신학을 따르는 노선이라면 자세히 알기 어려운 존재일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괜한 오해 또는 무조건 따르게 되는 불상사를 방지할(!) 필요가 생깁니다. 이런 가운데 이동영 교수께서 독어판을 번역해 주시고, 수고로이 비평적 해제까지 길게 작성해 주셨기에 신알못(아마도 대다수)에게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불트만의 좌파이든 우파이든 개인적으로는 그가 제안한 케리그마를 통해 바라보게 만드는 실존적 신앙(혹은 신학)관이 성경을 직접 대면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주적 차원에서의 만남과 종말도 기억해야 하지만, 우주적 종말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맞이하게 될 부분이 바로 개인적 종말이기에, 개인이 그분을 만나지 못하면 신앙적으로 의미가 있을지 항상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책의 표현에서 만나게 되는, 제가 좋아하는 표현이기도 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이 불트만을 나타내주는 부분이 아닐지 싶습니다. 20세기 시대에서, 즉 삶의 자리에서 마주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남들이 뭐라 하더라도 그분을 따르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신자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항상 물을 때만이, 신앙은 하나의 살아있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123쪽

 

얼마 전 다시금 읽었던 박영선 목사님의 저서에서 실존적 신앙의 한계를 적고 있습니다. 조금 더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원하신다면 개인 차원에서, 즉 실존의 차원에서도 주님을 만나야겠고, 통전적인 차원에서도 그분을 알아가고 닮아가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책의 말미에 적혀 있는 출판사의 글처럼, 모든 부분에서 동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불트만도 모든 것에 동의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의 신앙과 신학에 보탬이 되는 부분을 받아들이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왜 그런지 연구하고, 기도하고 나아가길 바라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날마다 알아가는 것처럼, 나와 다른 신앙의 모습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겸손해지길 원하는 분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여러 다채로운 빛깔의 신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느껴지는 표지
다양한 예수에 대한 해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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