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서적 리뷰

나는, 휴먼

읽고쓰고나누고 2022. 4. 6. 00:53

나는, 휴먼 주디스 휴먼, 크리스틴 조이너 지음 (파주: 사계절, 2022)

 

“나는”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던 시기가 있다. 그러다가 어느새 “우리는”으로 바뀌는 태생적인 한국인의 패시브적 스킬을 보이는 ‘내가’ 등장한다. 그런데 제목이 재밌게도 <나는, 휴먼>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사람이라는 건가.

 

조금 더 주의 깊게 저자를 살펴보게 되면 만나게 되면서 “아”라는 단어가 나도 모르게 나온다. 성이었구나. 휴먼가(家)에서 태어난 저자의 이름이었다. 그래 나는 김가(家)라는 느낌과 비슷하게 다가온 제목으로 달라진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자서전에 어울리는 제목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내 삶을 글로 담아내는 것이 쉬울까. 전체적으로 돌아보고 그것을 책 한 권으로 썼을 때에 남들에게 들려줄 만한 소위, 있어 보이는 내용이 나올까. 주디에게는 넘치도록 너무나 많은 썰이 있었다. 휴먼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처럼만 보이는 일들을 했고, 해냈고, 나아갔던 존재 그 자체로 느껴진다. 그런데 그는 나라는 휴먼과 다른 휴먼인지 더 알고 싶어진다.

 

책은 열두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삶을 구분한다는 것은 역사를 나누어서 보는 것처럼 인위적인 것이기에 정확한 나눔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직선적이고도 계속적인 삶을 보게 되기에 편안하지 않다. 10대, 20대, 30대처럼 나눠 놔야 만족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좋아할 수 있는 숫자인 열둘로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성서에서의 열두 제자, 한 다스는 열두 개로 되어 있는 것처럼)

 

휴먼, 혼자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면 어느 군중 속에 하나로 있는 부품일까. 많은 고민을 갖게 되는 인간이란 무엇일까 싶을 때에 아니, 글의 초입에 다음처럼 이야기를 해준다.

 

이제 와 돌이켜 보니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나를 내가 되어야 할 사람으로 만들었다. 14쪽

 

홀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더불어 살아갈 때에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를 느낀다. ‘너’가 있기에 ‘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글을 읽어나가면서 더욱 느껴지는 우연이 아닌 필연과 같은 만남과 함께 살아간다는 공동체성이 느껴지는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삶의 지혜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고독하게 내던져진 존재라 믿어지는 가운데에서 “나는 내가 믿는 것을 위해 싸웠다.”(103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고립되고 만다. 그 옛날 플라톤이 봤던 것처럼,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우리는 계속 갇힌 채로, 보이지 않는 상태로 살게 될 것이다.”(127쪽)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탈시설, 통합교육, 사회복지 등을 배우고 알게 되는 삶을 살아가지만, 주디의 젊은 날에는 모든 것이 생소했고, 적용되지 않았고, 인정되지 않았던, 모든 것을 새롭게 개척해야만 했던 것임을 돌아보게 된다고 할까. 우리가 삶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당연하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돌아보도록 만든다. 정말 ‘피, 땀, 눈물’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상황에서 이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가만히 멈춰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고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던 그녀, 개인으로 시작하여 작게는 마을부터 학교, 지역과 국가, 세계로까지 이어지는 외침이 공허하게 흩어지지 않고 사람들을 모으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함께 움직이고 웃고 울고 껴안고 나아가는 운동(Movement)이 된 것이다. ‘만약에’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냐고 물으신다면 다음과 같으리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이 학교에서 우리를 볼 수 없다면, 그것은 학교가 우리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일터에서 우리를 볼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물리적으로 그곳에 접근할 수 없거나 고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버스나 기차와 같은 대중교통 수단이 접근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당이나 극장에서도 우리는 같은 이유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어디에서 보았는가? 154쪽

 

504호 말고 504조가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음을 그녀의 글과 역사를 통해서 알게 된다. 우리 또한 다르랴. 우리 주변에 보이지 않는 장애인들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우리 눈에 띄지 않게 존재하고 있음이 사실이 아닌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주디의 다음 문장은 나에게 심금을 울린다.

 

나는 마흔한 살에 마침내 동등한 시민이 되었다. 246쪽

 

지극히 당연하지만 당연하게 이룰 수 없었던 것이 ‘시민’이라는 것인가. 세상의 “변화는 결코 우리가 생각한 속도에 맞춰 찾아오지 않는다.”(262쪽) 것을 잊었나 보다. 그 가운데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나는, 휴먼>의 작가는 결국 이루어냈다.

 

나는 내가 되고자 했던 그 사람이다. 289쪽

 

장애인, 여성, 유대인, 이민자라는 규정을 넘어서는 삶을 산 그녀를 통해서 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아래의 내용은 예스의 리뷰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제야 시작하는 퍼포먼스를 통해서 알게 되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은, 그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가 아닌가. 일하기 위해서 자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출퇴근을 위해 그 어렵다는 지옥철 탑승을 위해서 몸부림쳐야 발견하게 되는 것인가. 내가 힘드니 너의 아픔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곳은 사회라 부를 수 없다. '너'가 존재하기에 '내'가 존재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켄크로이츠를 따르던 이들의 장애인 살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직접적인 생존권 박탈이 아닌 간접적인 것 말고 무엇이 있겠냐고 묻고 싶다.

물론, 정치인들의 이슈화를 통해서 겨우 알게 된 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들의 철부지 행동에 알게 된다는 것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민주화를 이룩한 지 고작 몇 년밖에 되지 않은 신진 민주 사회가 아니기에 말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은 이렇게 '직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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