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소설, 산문

좋게 나쁘게 좋게

읽고쓰고나누고 2022. 3. 28. 02:06

좋게 나쁘게 좋게 김주련 지음 (구리: 선율, 2017)

 

시를 묵상한다면 그것은 시편이 되는 것일까. 삶에 대한 진솔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나선 발걸음을 돌아보는 것일까. 자신이 살아간, 삶의 자리에서 마주한 일련의 순간들은 찰나처럼 빛날 수도 또한 영겁을 마주한 듯 칠흑 같은 어둠을 보이기도 한다.

 

글밥으로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와 닿을 시를 쓴 작가의 글을 보면서 생각을 되돌아본다. 글과 삶은 떼어낼 수 없는 존재인지 아니면 삶이 글 속에 묻어나는 것일지.

 

사람들은 고전이 된 문체를 버리고 각자의 방식을 앞세우고 나는 새로 고른 단어들에 자주 걸려 넘어졌다 일어섰다 넘어졌다 일어섰다 44쪽 「각자의 방식」

 

수북한 교정지에 빼곡한 인사말 속에서 나의 말은 새롭게 태어난다 말들은 태어나자마자 다시 괄호로 묶이거나 말줄임표를 만난다 가까스로 건사된 말들은 무사히 말해질까 66쪽 「받은 편지함」

 

누군가는 산문시를 싫어하고 시가 아니라고 하지만, 정제된 단어로 표현된 리듬감이 가미된 시조차도 시인의 화자를 표현하지 못하기도 한다. 오히려, 산문처럼 이루어진 시 속에서 시인이 바라본 삶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초대처럼 느껴진다.

 

시인이 살아온 삶을 모르기에, 그래도 시 속에서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기에, 더불어 그 삶이 마주한 자리가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멀지 않음을 느끼기에, 그 시는 살아서 나에게로 돌아온다.

 

시집의 제목을 10일간 묵상처럼 그려보았다. 하루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그래도 다시금 좋음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그 하루가 계속 좋은 시간만 담겨 있지 않기에 말이다. 그래도, 그래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할 수 있기에 그렇다고 말해본다. 사랑하니까.

 

<공포의 텍스트>를 마주하며 느꼈던 보라색과는 또 다른, 고혹적인 보라색의 겉표지. 시인 김주련을 마주한다. 어느 한 단체의 대표가 아닌 시인으로서의 모습. 닳고 닳은 문장이 아닌 날 것 같지만 정제된 문장의 시를 곱씹어 봐야겠다.

 

시집은 한 손에 잡혀야 더욱 좋은 판형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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