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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것 - 사유와 성찰

읽고쓰고나누고 2020. 9. 22. 21:05

읽는다는 것 - 사유와 성찰

 

  무엇인가를 읽는다는 것은 원인과 결과에 따르는 목적을 위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 어린아이조차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거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서 읽는다.

 

  읽는다는 것의 대상은 무엇인가. 대중 매체를 넘어서 현존하는 모든 매체들은 문자에서 그림으로 그리고 움직이는 영상으로 중심축이 이동되어졌다. 종이 위에 인쇄된 글을 통해서 사업을 영위하던 신문사들이 대거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이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한 곳은 사라져간다. 심지어 방송국조차도 TV화면 안에 이루어지던 사업의 행위들도 인터넷으로 스마트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에 의한, 빅 데이터의 분석에 의한 자료의 이해와 예측이 가능해지는 시대이기에 격차는 더욱 더 커다란 것으로 벌어지고 말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모습이 재화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성에서도 벌어지는 것이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대체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람보다 더욱 뛰어나고 명철한 알고리즘을 소유하고 있는 인공신경망을 가진 슈퍼컴퓨터를 이겨낼 것인가. 심지어 음악조차도 작곡해내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읽는다. 살아가기 위해서 읽고 소통하기 위해서 읽는다. 자기 자신의 만족을 1차적인 목적으로 하여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아닐지라도 자기만족을 위해서 읽는다.

 

  그리고 이 읽어냄을 멈추는 순간이 타자와의 단절, 즉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처럼 초연결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소통의 불가는 죽음보다 더한 극한의 상황일 테니 말이다.

 

  바로 이 상황에서 코로나는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준다. 정보의 소외, 만남의 부재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웃들을 돌아볼 수 없을까. 그리고 그들을 비대면의 방법을 통해서라도 도울 수는 없을까.

 

  보다 적절한 관심과 배려만이 이들을 사회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기에 더욱 더 고민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는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종교에 의하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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