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슬픔은 발효중

읽고쓰고나누고 2025. 3. 27. 15:50

슬픔은 발효중 박경임 지음 (고양: 훈훈, 2023)

 

가족이 주는 안정감과 영향력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준다고 믿고 살아간다. 자는 모습이 가장 예쁜 아이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갑자기 존재에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된, 하늘의 별이 되면 얼마나 당혹스러울지.

 

준비 없는 이별을 맞이하는 이들은 아프고 아프다. 그런데 더더욱 아픈 이들이 있다. 자살 유가족들의 삶이 그랬다. 그들에게 필요한 위로 대신에 낙인을 찍던 주변인들, 주변인들, 주변인들.

 

이즈음에서 작가의 책 제목과 내용을 떠올려 본다. 발효와 부패의 차이는 무엇일까. 슬픔을 농축하면 발효가 될지 아니면 농축되지 못하고 터져서 부패하게 될지.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바울의 외침이 생각났다(롬 12:15). 죽음에 대해서 많이 살펴보고, 애도와 상실에 대해서 고민하는 나에게 관련 책을 읽고 사유하는 시간은 소중했기에 결국에는 읽게 된 이 책의 글은 삶을 이루어가는 근저에 존재하는 아픔을 돌아보게끔 한다.

 

소중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부재와 미처 떠나보냄을 준비치 못했던 아이의 이야기. 어쩌면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서 멀리하게끔 하면서, 제대로 된 마지막 인사를 못 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싶었다. 더하여서 지금이야 조금은 나아졌지만, 자살 유가족의 아픔은 돌아보지 않고 폭력적인 언사를 보이던 것들도 생각난다. 지옥 간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던 이들.

 

삶 자체가 지옥처럼, 치욕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들을 피하고 싶었을 남은 자에게 필요한 건 위로와 애도의 시간이었다. 충분한 이별의 시간이 필요했음에도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슬픔을 발효시켜서 뜨거운 눈물로 다른 아픈 이를 어루만져 주는 작가의 삶을 글로 만났다. 사랑하며 살기도 바쁜 요즘에 사랑만 남길 수 있기를 바라며.

 

겉표지의 소녀가 날리는 민들레 꽃씨가 별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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