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길을 물었다 이성희 지음 (구리: 선율, 2024)
“정원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물으신다면,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라는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있다고 답해 봅니다. 또한 고향에서 멀리 내려와 살고 있는 저라고 말할 수 있고요. 숨 막히는 도시의 생활이 아니라 뒷동산도 있고, 마당도 있던 삶이었습니다. 그 푸른 소중함을 몰랐던 사람이랄까요.
이번에 읽어본 저자는 저 멀리 미국이라는 곳에서 가드너의 삶을 살게 된 분입니다. 치열한 도시의 삶을 살다가 정원을 가꾸는 삶이라니 멋지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도전 정신이 느껴지고요.
책에서 만나는 정원은 사계절을 담아냅니다. 봄을 맞이하려고 준비하는 정원사와 식물들로부터 시작하여 잎사귀가 무성해지고 아름다운 꽃들과 열매를 맺는 계절을 지나 갈색을 머금은 낙엽을 벗으면서도 겨울의 쓸쓸함을 이겨 내는 존재들과의 이야기.
드넓은 대지 위에 펼쳐진 푸르른 초록을 소유하고 싶은 인류에게 앞마당은 정원으로 가꾸기에 안성맞춤이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그 욕심이 강렬해져서 나만의 정원으로, 오로지 초록 잔디만 가득하길 바라고요. 책에서 만나는 초록 콘크리트라는 표현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회색 콘크리트와 동류라니요. 그래서일까요. 저자의 도입부 문장은 봄과 함께 찾아오는 부활절의 색깔을 입히려고 합니다.
우주적 구원이 갈릴리 시골 마을에서 시작되었듯이, 피조물의 해방에 관한 암시는 잔디를 걷어내고 벌과 나비를 맞아들이는 조그만 정원 한쪽에 내포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48쪽
정원을 통해서 마주하는 삶과 생명을, 교회로 잇대어 말하는 저자의 문장은 어렵지 않았고, 억지스러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교회와 신앙과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순간이 되도록.
교회의 언어는 시대의 아픔에 공감할 뿐 아니라 재미를 넘어선 기쁨을 묘사할 수 있어야 하고 미학과 철학과 과학이 향연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이런 언어들로 차고 넘치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종교는 이 모든 언어를 특히 공감의 언어를 상실했다. 109쪽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통해서 그리고 그 안에 함께 하는 다양한 색깔의 나무와 정원을 통해서 누리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정원사의 소임은 문명과 자연의 손상된 관계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49쪽
독서모임을 통해서 만나게 되어 좋았던 책입니다. 겉표지가 주는 질감이 대지와 식물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졌고요. 자연주의 정원이 인기를 얻는 이유도, 정원에서 영성을 쌓을 수 있는 이유를 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더하여 산불로 인하여 초록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분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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