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소설들

눈부신 안부

읽고쓰고나누고 2025. 6. 7. 22:48

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파주: 문학동네, 2023)

 

책을 펼치기 전 표지와 제목부터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을 테니까. 표지를 바라보니 황금빛이 물들어 있는 어느 여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를 기대한다.

 

얼마나 커다란 마음을 담은, 누군가에게 눈부신 안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글일지 고민했다. 백수린 작가의 등단 후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니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안부라 생각하게 되고.

 

21세기인 지금, 안부를 묻고 싶다면 DM이나 카톡 혹은 화상전화로 해결하는 직접 연결 시대이니 기다림을 어려워한다. 돌아보면, 나의 학창 시절로만 가더라도 PC통신에 영화처럼 접속하기 위해서 PC를 켜고, 모뎀으로 전화선을 통해 접속을 시도해야만 대화방에 입장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거나 방식을 바꾸면, 오롯이 편지밖에 마땅치 않았던 그 시절. 아, 어떻게 사랑을 이야기하고 만남을 지속할 수 있었나 싶은 나날들.

 

“나 때는 말이야!”를 외치는 어른들을 보면, 왠지 어른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들도 있겠지만, 그들도 사랑하고 아파하고 나아갔다.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 속에서 삶을 지탱하고 살아 냈던 삼촌과 이모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일 테고. 바로 이들의 추억과 사랑과 아픔이 담긴 책이자 안부를 만났달까.

 

어쩌면, 윤리 수업 시간에 언급되었을 파독 광부와 간호사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만 존재하는 수업용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로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아름다움과 슬픔과 사랑들이 그들에게 없었으랴? 너무나 눈부셨을 텐데.

 

가장 젊고 아름답고 멋졌던 나이의 청춘들이 고국의 안정과 가족을 위하여 떠났던 유럽의 독일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마음들을 알고자 하기에 책을 집어 읽게 된 게 아닐까. 그래서 주인공인 해미도 떠나왔던 삶 속의 나날들이 단지 회피하고자 했던 어느 순간으로 머무르지 않고 찬란하게 빛났던 삶 속의 한 부분임을 서서히 알게 되어가던 게 아니었을까.

 

소설의 전개가 흘러감에 따라서 알게 되는 주인공인 현재의 ‘해미’와 그녀만 바라보는 ‘우재’의 모습은 액자식 구성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사이에 등장하는 가족 이야기와 잠시나마 만나서 행복했던 독일의 (간호) 이모들과 추억의 이름 ‘한수’와 ‘선자’ 이모의 이야기. 책의 시작과 끝에서 마주하는 야자수 이야기는 외롭지만 삶을 살아낸 그들을 보여주는 이야기 같았다.

 

“외로움만큼 무서운 병은 없”다고(207쪽) 말해주던 이모의 문장은 중의적으로 파독 간호사들의 삶과 지금도 외로워하는 ‘해미’를 돌아보게 만들고, 삶이 외로움의 연속임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더 사랑이 필요했고, 그 시절 아련한 추억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일까.

 

자꾸만 다가갈수록 마음을 열지 못했던, 아니 자신을 몰랐던 해미와 왜인지 모르게 ‘선자’ 이모의 그 사람 이니셜 ‘G.H.’가 겹친다. 더 나아가 인생의 목적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냄으로 읽혔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고, 살아야 하니까.

 

소중한 사람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자,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의 진행을 알고 있는 자, 지켜 주지 못한 자들의 아픔과 슬픔은 찬란하게 피어난 삶의 아름다움을 잊게 만든다. 그래서 더 ‘해미’의 진짜 이모의 문장이 다가왔다.

 

“이모는 네가 찬란히 살았으면 좋겠어. 삶은 누구에게나 한 번 뿐이고 아까운 거니까.” 227쪽

 

누구에게나 찬란한 삶이기에, 삶 자체로 아름답기에, 신을 믿던, 믿지 않던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갈 때 아름다움은 찬란하지 않을까. 지금 옆에 있는 이와 함께 살아가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녀)가 나에게 말할 테니까.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304쪽

 

 

 


 

오늘 들렸던 서점 매대에서 마주했던 책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담아올지 고민되던 책. 아마도 다음엔 서가에 꽂아놓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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